모기를 증오하며 46: 시비(是非)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시비(是非)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옳고 그르다는 것도 다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꼭 옳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그래서 나 자신이 항상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섣불리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옳은 것을 옳게 여기고, 그른 것을 그르게 여겨야 한다. 시비는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현명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옳고 그름 사람이 만든 것이니

옳음 그름 분간키 어려웁다네.

옳다 해도 옳은 것 되지 못하고

그르다 해도 그른 것 되지 못하네.

옳고 그름 바로 이와 같으니

내 어찌 옳고 그름 따지겠는가.

是非人所爲 難分是與非

爲是不爲是 爲非不爲非

是非正如此 吾何爲是非

안방준(安邦俊), 「옳고 그름에 대해서[是非吟]」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란 막상 쉽지 않다. 옳다고 해서 꼭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르다 해도 꼭 그른 것도 아니다. 이처럼 옳고 그름에는 이러한 속성이 깔려 있으니 내가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다. 시비를 따지는 일이 때로는 새로운 시비꺼리를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마음의 시비는

지로 말미암아 옳고 그름 있다 하였네

참된 옮음 그를 수 없을 것이며

참된 그름 마땅히 그르다 말해야 하네

가만히 살펴보건대 세상의 옳고 그름은

참된 옳고 그름 있음 드물었다네.

남이 옳다니까 내가 옳다는 것은 잘못이며

남이 그르다니까 내가 그르다는 것도 잘못이네

이치로 옳고 그름 살펴보아야

이제는 참된 옳고 그름 얻을 수 있네.

孟云心是非 由智有是非

眞是不可非 眞非當云非

竊觀世是非 鮮有眞是非

人是我是非 人非我非非

以理觀是非 方得眞是非

정종로(鄭宗魯), 「옳고 그름에 대해서[是非吟]」


처음 도입부는 『맹자』「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단서이다.[是非之心, 智之端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존재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또, 시비의 판단 기준을 남에게 두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은 어떻게 따져야 할까. 바로 이치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시비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시로 썼다.




참으로 옳은 것 시비하면 옳은 것 글러지니

억지로 세파 따라 시비할 필요 없다.

시비를 문득 잊고 눈 훨씬 높이 두면

옳은 것 옳다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하리.

是非眞是是還非 不必隨波强是非

却忘是非高着眼 方能是是又非非

허후(許厚), 「옳고 그름에 대해서[是非吟]」


1구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다른 한 가지 해석은 다음과 같다. “옳은 것이 참 옳은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될 수 있나니” 여기서는 위의 번역문에 있는 번역을 따른다. 참으로 옳은 것도 시비를 남들과 따지다 보면 그른 것이 되어 버리곤 한다. 당시의 분위기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니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따질 필요가 없다. 시비를 당장 따져서 결판을 내고 싶겠지만, 일단 시비를 따지지 말고 잊으면 그뿐이다. 그러고 나서 저 멀리 고원한 데에 지향을 삼으면 언젠가 시비가 명확히 판단될 때가 오게 된다.





세상의 시비 문제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이 설정한 시비(是非)의 기준을 절대적으로 믿는 경우, 가치중립적으로 시비를 판단하는 경우, 시비 자체를 초월한 경우 등이다. 첫 번째 경우는 아집과 독선일 때가 많고 세 번째 경우는 종교인이나 가능한 수준으로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옳고[是], 그름[非]를 현명하게 따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아서 쉽게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둘 다 틀렸다는 양비론(兩非論)이나 둘 다 맞다는 양시론(兩是論)도 적절치 않다. 이 두 가지는 사실 비겁의 다른 이름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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