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사람의 음식남녀 21

『食色紳言』,[明]龍遵 著

by 박동욱

[21] 살생을 그만 둔 진조(陳慥)


동파가 진계상과 함께 왕래를 했다. 매양 왕래하는 즈음에 으레 읍(泣)자 운자로 한 편의 시를 지었는데 진계상은 죽이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니, 이 점을 가지고 비꼬았다. 그러자 진계상이 이미 살생을 않게 되니 마을 사람들이 감화가 되어 지금까지도 고기를 먹지 않는 자가 있었다. 모두가 “그가 죽지 않았지만 신이 그의 사치 때문에 먼저 눈물을 흘리셨네”고 말했으니 이 말이 사람을 서글프게 하였다.


東坡與陳季常往來, 每過往之際, 輒作泣字韻詩一篇, 季常不禁殺, 以此諷之. 季常既不殺, 而里中化之, 至今有不食肉者. 皆云: “未死神先泣.” 此語使人淒然.




[평설]

소동파는 미식가로 알려져 있다. 저렴한 가격에 돼지고기를 즐길 방법을 찾다 동파육(東坡肉)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음식에 관한 글로「老饕賦」,「菜羹賦」,「食豬肉詩」,「豆粥」,「鯨魚行」을 짓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황주(黃州) 유배 시절에 생명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고서, 큰 동물을 죽이지 않다가 후에는 조개 따위도 죽이지 않게 되었다.

소동파와 진조(陳慥, ?∼?)는 각별했던 사이였다. 진조는 유명한 공처가(恐妻家)로 사나운 처 하동 유씨(河東柳氏) 앞에서 꼼짝을 못했다. 소동파는 그 모습을 보고 시에서, “하동사자의 울음소리에 손지팡이 땅에 떨굴 정도로 놀라네[河東獅子吼 手杖落地驚]”라 하였다. 진조가 살생을 멈추지 않자 소동파가 시를 지어 그 사실을 꼬집었다.「岐亭 五首」에 “무자는 비록 사치스럽지만 천신도 그의 사치에 분개하였네[武子雖豪華,未死神已泣]라 나온다. 진조는 그때 느낀 바가 있어서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도 거기에 감화 되어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하였다.


[어석]

진조(陳慥, ?∼?): 송나라 미주(眉州) 청신(靑神) 사람. 자는 계상(季常)이고, 호는 용구거사(龍丘居士)며, 진희량(陳希亮)의 아들이다. 젊었을 때 항상 소식(蘇軾)과 함께 병사(兵事)와 고금의 성패에 대해 논하면서 스스로 일세호사(一世豪士)라 불렀다. 점차 장성하면서 생각을 바꿔 책을 읽으면서 이 일로 자기 시대에 성공을 꾀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만년에 광주(光州)와 황하(黃河) 일대에 은둔하면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쓰고 다니던 모자가 우뚝하게 높아 사람들이 방산자(方山子)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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