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2

산영루 -가을 저녁을 노래한 두 시인 茶山과 秋史

by 박동욱

산영루 -가을 저녁을 노래한 두 시인 茶山과 秋史


북한산은 아름다운 명소가 많기로 유명하여 서울 사람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산 중에 하나다. 요즘 사람들은 북한산 하면 인수봉이나 백운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예전 문인들이 손꼽은 장소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이옥의 유명한「중흥유기(重興遊記)」에는 북한산의 명소가 잘 설명되어 있다.


자동(紫峒)을 지나니 경치가 아름답고, 세검정(洗劍亭)에 오르니 이름답고, 승가사(僧伽寺)의 문루(門樓)에 오르니 아름답고, 문수사(文殊寺)의 문에 오르니 아름답고, 대성문(大成門)에 임하니 아름답고, 중흥사(重興寺) 동구(峒口)에 들어가니 아름답고, 용암봉(龍岩峰)에 오르니 아름답고, 백운대(白雲臺) 아래 기슭에 임하니 아름답고, 상운사(祥雲寺) 동구가 아름답고, 폭포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대서문(大西門) 또한 아름답고, 서수구(西水口)가 아름답고, 칠유암(七游岩)이 매우 아름답고, 백운동문(白雲峒門)과 청하동문(靑霞峒門)이 아름답고, 산영루(山暎樓)가 대단히 아름답고, 손가장(孫家莊)이 아름다웠다.


이옥은 수많은 북한산의 명소를 언급했다. 그는 북한산은 아름답지 않은 곳이나 좋지 않은 때가 없다고 극찬하면서 “아름답기 때문에 왔다. 아름답지 않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특별히 산영루를 아껴서 산중에 이틀 동안 머무르면서 세 번이나 여기에 올랐다. 이옥 뿐 아니라 많은 문인들이 북한산을 찾게 되면 산영루를 반드시 찾고는 기록을 남겼다.



북한산 산영루 (1885).bmp 미국 무관 출신의 'Foulk' 촬영 그림 1885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 도서관 소장)


산영루가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또 언제 유실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정귀(李廷龜)의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는 1603년에 쓰였는데, 이때 이미 산영루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뒤 시기를 알 수 없는 때에 다시 복원되었다가 1925년 대홍수 때 완전히 유실되어 10개의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그 뒤 2014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시기가 분명치는 않지만 여러 번 유실과 복원을 거듭했던 것만 분명해 보인다.

다시 태고사로 가는 길을 가다가 산영루를 들렸다. 산영루는 돌 시내 위에 있었는데 단청이 화려하고 시냇물 소리가 난간을 두르고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갈 생각을 잊게 하였다. 듣자니 시내 동쪽 언룡교 위에 있던 것을 올해에 이곳으로 옮겨지었다고 하였다.

이의숙(李義肅), 「華嶽日記」


산영루는 중성문을 지나 대동문으로 향하는 계곡을 따라 오르면 용학사 갈림길에서 태고사 방향으로 오르다 만나게 된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중흥사지 비석거리 맞은편 넓은 암반 위에 위치한다. 위의 기록처럼 위치도 여러 번 옮겼던 것으로 보이니 예전의 정확한 자리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 저명한 문인인 김정희, 정약용, 윤기, 이정귀, 이좌훈 등이 시문을 남긴 바 있다. 그중에 다산과 추사의 시는 특히 유명하다.


154-1. 산영루터.bmp 산영루 터


험한 돌길 끊어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겨드랑이 시원하여 날개 돋아 올라갈 듯

잦아드는 종소리에 가을도 저물었고

온 산 잎새 누래지고 물소리 차가워라.

숲에 말 매어두고 얘기 꽃 피우는데

구름 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넉넉하네.

해 지자 안개 구름 산 빛을 가뒀는데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오네.

巖蹊纔斷見危欄 雙腋泠泠欲羽翰

十院疏鍾秋色暮 萬山黃葉水聲寒

林中繫馬談諧作 雲裏逢僧禮貌寬

日落煙霏鎖蒼翠 行廚已報進杯盤

정약용, 「산영루에서[山映樓]」


1794년(정조 18) 9월 18일에 정약용이 정약전 등과 함께 북한산성을 오를 때 지은 시이다. 계속될 것만 같은 산 길 속에 갑작스레 높은 정자가 모습을 드러내니 마치 신선이 된 것만 같다. 2구는 “누각 양쪽 물소리 시원하여 누대는 날개 돋아 올라갈 듯.”이라 하여, 산영루의 처마 모양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저물어 가는 가을에 어디서 들리는지 모르는 종소리는 퍼져 가고, 온통 노랗게 물이 든 잎새가 가득한데 물소리는 유독 차갑게 들린다.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서 산영루의 풍경을 선명히 그려냈다. 일행들과 잠시 숨을 고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스님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벌써 해는 지고 온통 안개와 구름이 산을 에워싸고 있다. 마침 술 생각이 나는 참에 술상을 올린다는 말을 전한다. 가을밤 산영루는 그들을 밤새 잡아 두었으리라.


산영루 (1896년 독일 사람 촬영).jpg 1896년 독일인이 촬영한 사진



나무마다 붉게 물든 숲속에는

감도는 시내가 다시 산줄기 끊었네.

먼 종소리 비에 잠겨 잦아들었고

범패(梵唄)는 구름 속에 싸늘하구나

돌 늙으니 전생을 떠올리게 하고

산 깊으니 진종일 바라보누나.

안개는 막히고 머무름이 없으니

오솔길 사람 향해 너그럽구려

一一紅林裏 廻溪復截巒

遙鍾沈雨寂 幽唄入雲寒

石老前生憶 山深盡日看

煙嵐無障住 線路向人寬

김정희, 「산영루에서(山映樓)」


추사는 산영루를 이렇게 읊는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온통 붉게 단풍이 들었다. 시내가 산줄기를 끊은 그곳에 산영루는 서 있었다. 산영루는 10여개의 절들이 포위하고 있다. 빗속과 구름 속에 종소리와 범패 소리가 나직하고 싸늘하게 들려온다. 오래된 돌과 깊은 산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오래된 돌은 전생의 기억을 품은 듯이 그렇게 서 있었으니 내가 살지 않았던 시간들을 떠오르게 하고, 깊은 산은 구석구석 볼 것이 널려 있었으니 보고 또 보아도 시간이 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짙게 깔렸던 안개는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잠시 사라져서 오솔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날 비는 내리고 해는 지고 있었다. 조금도 보이지 않던 희망이 잠시 몸을 드러낸다. 다산과 추사는 이렇게 산영루에 대해 시를 남겼다. 다산은 산중의 절속(絶俗)과 일상의 향유를 모두 누리려 했다면, 추사는 선승(禪僧)과도 같은 적막 속에 산수와 인생을 응시하고 출로(出路)를 모색하고 있었다.


산영루 (독일 장교 촬영).jpg 독일 장교가 촬영한 사진


요즘 사람들의 모임은 대개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주위의 소음은 대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한다. 거기다 술이 없으면 오래도록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어색하다. 반면 정자(亭子)는 자연의 소리나 빛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다. 대화가 끊기면 주변의 풍경과 소리들이 그 공백을 채워준다. 정자는 이제 우리에게 잊혀지고 낯선 공간이다. 한나절 그곳을 찾아 산빛이 물에 비추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혜촌 김학수옹의 그림 산영루.jpg 혜촌 김학수의 산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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