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色紳言』,[明]龍遵 著
[23] 메추라기 꿈을 꾼 채경(蔡京)
채경(蔡京)이 재상이 되었을 적에 대관(大觀) 연간에 하설(賀雪) 때문에 채경의 집에서 잔치를 열어 주었다. 요리사가 천 여 마리의 메추라기를 죽였다. 이날 밤에 채경이가 꿈을 꾸니까 고을의 메추라기가 채경에게 시를 주었다.
啄君一粒粟 그대의 한 알 좁쌀 쪼아 먹으면
爲君羹內肉 그대 위해 국 속의 고기 되겠네
所殺知幾多 죽인 것이 얼마 되는지 알지 못하고
下箸嫌不足 젓가락 댈 때에 부족하다 염려하였네.
不惜充君庖 그대 부엌 채워짐 아깝지 않으나
生死如轉轂 생사가 수레바퀴 도는 것 같네.
勸君慎勿食 권하노니 그대는 삼가서 먹지 말라.
禍福相倚伏 화복은 서로 맞물려 있는 법이니.
채경이가 이로 말미암아서 다시는 먹지 않았다.
蔡京作相,大觀間,因賀雪,賜宴於京第,庖者殺鵪子千餘。是夕京夢郡鵪遺以詩曰:“啄君一粒粟,爲君羹內肉. 所殺知幾多,下箸嫌不足. 不惜充君庖,生死如轉轂. 勸君慎勿食,禍福相倚伏.” 京由是不復食.
[평설]
『오잡조(五雜組)』에는, “손승우(孫承祐)는 한 차례의 잔치를 베푸는 데 1천여 가지의 동물을 살생시켰고, 이덕유(李德裕)는 한 그릇의 국[羹]을 마련하는 데 2만 금이나 소비하였으며 채경(蔡京)은 메추라기를 좋아하여 하루에 1천 마리 가량이나 먹었고, 제왕(齊王)은 계척(鷄跖 닭의 발바닥 살)을 좋아하여 하루에 70개를 먹었으며 강무외(江無畏)는 하루에 도미[鯽漁] 3백 마리를 먹었고 왕보(王黼)는 창고에 참새젓[雀鮓]이 세 칸이나 저장되었다.”라 나온다. 이처럼 음식을 위한 사치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쳤다.
채경(蔡京)은 중국 역사상 유명한 간신으로 악명이 높은데, 수호전에는 그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의 생일 잔치에는 채경의 눈에 들기 위해 사람들이 준비한 어마어마한 선물들이 몰려 들었다. 꽃게알을 넣어 만든 만두 한 가지를 만드는데 엽전 130만냥 이상이 들었고 메추라기 탕 한 그릇을 만드는 데 수 백마리의 메추라기가 들어갔다.
자신의 미식을 위해 수없이 많은 메추라기를 죽였으니, 메추라기의 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독특한 미식을 위해서는 권력의 유지가 필수적이었다. 권력이 남들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자신의 헛된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역시 그의 말로(末路)도 좋지 않았다. 그는 담주(儋州:海南島)로 유형(流刑)을 받아 배소(配所)로 가는 도중 담주(潭州:湖南省)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어석]
* 채경(蔡京, 1047~1126): 자는 원장(元長). 휘종(徽宗) 때 재상이 되어 왕안석의 신법을 부활하고 보수파를 탄압하였다. 뒤에 금나라의 침입을 초래하여, 육적(六賊)의 한 사람으로 몰려 실각하였다. 그의 본령은 정치가로서보다 문인으로서 뛰어나 북송 문화의 흥륭에 크게 기여하였고, 그 자신 능서가(能書家)로서도 이름이 나 있었다.
* 하설(賀雪): 서설(瑞雪)을 경하(慶賀) 함.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을 풍년의 조짐으로 여겨 신하들이 군주에게 표(表)나 시를 바쳐 경하한 일을 이른다.
* 화복은∼있는 법이니: 《노자(老子)》 제 58장에 “화는 복이 의탁하는 바이고, 복은 화가 숨어 있는 바이다.〔禍兮福所倚, 福兮禍所伏.〕”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