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8

봉원사(奉元寺), 천 년 고찰

by 박동욱

봉원사(奉元寺), 천 년 고찰

봉원사는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에 있는 절로 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이다. 이 절은 신라 말 도선 국사가 반야사(般若寺)라는 명칭으로 창건하였고, 고려 말 태고보우가 중창하였다. 영조 대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큰아들인 의소세손(懿昭世孫)이 태어난 지 3년 만에 죽자 반야사가 있던 자리에 묘를 조성하고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이때 사찰 이름을 봉원사로 바꾸고 의소묘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영조가 봉원사의 현판을 하사하였다. 당시부터 ‘새절’이라 불렀다. 봉원사가 위치한 마을도 ‘새말(新村)’이라고 불러서 신촌의 연원이 되었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윤영(尹映)에게 허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곳도 바로 봉원사였다.



성 서쪽에 5리도 못되는 곳에

새로 지은 절 이름 봉원사라네.

금벽 단청(金碧丹靑) 마치 귀신 솜씨 같았고,

지붕 모서리 전부다 날아갈 듯하네.

아이 얼굴 꼭 닮은 부처 하나를

이곳에 모셔다가 받드는구나.

묻노니 무슨 공덕 있었었길래

중생들이 이리도 달려오는가

미련한 중 범보다 건장하여서

손님 와도 맞이할 줄 알지 못하고

대낮에도 포단에서 자는가 하면

흉년에도 쌀밥만 지어서 먹네.

城西不一堡 新寺曰奉元

金碧類鬼神 觚稜勢飛翻

有佛顔如童 宅玆以爲尊

借問何功德 衆生劇趨奔

頑僧健於虎 客到不迎門

白日蒲團睡 荒年稻飯飡

이덕무, 「봉원사(奉元寺)」


지금의 절은 이덕무가 시를 짓던 무렵에 세워진 것이다. 단청이며 지붕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이 얼굴 닮은 부처를 봉안해 놓은 것 뿐인데, 사람들이 많이들 찾곤 하였다. 이렇게 전반부에서는 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위주로 묘사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심술궂은 중을 풍자하고 있다. 떡 벌어진 몸집의 중은 손님이 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포단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식사 때가 되면 흉년인데도 쌀밥을 차려서 먹었다. 절에 찾아 와서 풍경에 반했다가 돼먹지 않은 중놈한테 심사가 뒤틀렸다.



봉원사 연꽃.jpg 봉원사 연꽃


닷새 동안 성 서쪽에서 푸른 산 보고 나니

가을이 온 승전봉(勝戰峰)에 석양이 비치었네.

절로 흐르는 물줄기에 붉은 잎 떠내려가고

조각구름은 돌아가는 스님을 전송하네.

인간세상 거친 길을 다 걸어온 뒤에

숲 아래 적막한 문 비로소 찾아왔네.

유람 온 귀인들의 자취가 적지 않아서,

여기저기 어지러이 이끼 잔뜩 문드러져 있네.

五日城西閱翠微 戰峰秋色帶斜暉

細水自流紅葉去 片雲相送一僧歸

人間行盡崎嶇路 林下來尋寂寞扉

裙屐遊痕看不淺 十分渲染亂苔衣

조면호(趙冕鎬), 「봉원사(奉元寺)」


닷새 동안 도성 서쪽을 두루 보다가 가을 석양이 비치는 승전봉에 도착했다. 승전봉 고개를 넘으면 봉원사가 나오는데, 승전봉에서 봉원사 가는 길은 매우 환상적으로 묘사되었다. 붉은 잎이 떠내려가는 시내가 자리 잡았고, 돌아가는 스님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이 있었다. 험한 길을 다 지나고 나자 사문(寺門)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에 찾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지 이끼들은 이리저리 문드러져 있었다. 조면호는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시에서 “계절은 아득히 흐르고 흘러 가을이 되니, 가을 소리 가을빛에 몇 사람이나 놀러 왔던가. 상방(주지가 거처하는 방)에서 예가 끝나자 중들에게 단풍나무와 국화가 모두다 화두일세.[節物迢迢接素秋, 秋聲秋色幾人遊. 上房禮罷諸禪侶, 紅樹黃花捴話頭]”라 하였다. 마지막 구에서 스님들에게 단풍나무와 국화가 모두 화두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화두를 삼을 만한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봉원사 대웅전 편액.jpg


쓸쓸한 옛 절에는 풍경이 비었는데

예전에 놀던 일이 번개처럼 떠올랐네.

바위는 언 눈 탓에 새 부처인가 싶고

사람은 마른 소나무와 함께 대머리 됐네.

새벽달은 정겨운 듯 문간에 기대 있고

찬 강은 약속 한 듯 건너 숲과 통해 있네.

가장 가여운 건 화로 켜고 등불 걸린 승방에

탁자 아래 지금은 광훈상인의 낡은 대그릇 없음이네.

古寺蕭然物色空 憶曾游事電光中

巖因凍雪疑新佛 人與枯松幷禿翁

曉月有情依戶在 寒江如約隔林通

最憐爐室篝燈處 卓底今無訓老籠

김려, 「겨울날 풍고 상공과 유자범, 이사소, 김명원, 이숙가, 조사현, 이문오, 조군소 등 여러 사람들과 봉원사에서 노닐다가 풍고의 시에 화운하다[冬日 陪楓皋相公曁兪子範,李士昭,金明遠,李叔嘉,趙士顯,李文吾,趙君素諸人 游奉元寺 和楓相韻]」


1819년 11월 16일에 김려는 김조순, 김조, 유한식, 조학은(趙學殷), 조진익(趙鎭翼), 이의현(李羲玄), 이장현(李章顯) 등의 여러 벗들과 함께 봉원사를 유람하였다. 이날의 모임은 대략 3~40명 정도가 모인 성대한 아회(雅會)였다. 여기에서 바둑을 두고 노래를 하고 거문고를 연주했다. 게다가 밤새 술을 마시면서 시를 수창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지었던 시들을 엮어서 ‘상심낙사(賞心樂事)’라 이름 붙였다. 상심낙사(賞心樂事)란 완상하는 마음과 즐거운 일이라는 뜻으로, 남조(南朝) 사영운(謝靈運)의 「의위태자업중집시서(擬魏太子鄴中集詩序)」에 “천하에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 이 네 가지는 동시에 갖기가 어렵다.[天下良辰美景賞心樂事四者難并]”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다산도 상심낙사란 말을 즐겨 썼다.

이날의 모임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기록을 남긴 바 있다. 김조순은 「봉원사를 유람한 기록(記奉元寺遊)」, 「다시 봉원사를 유람하다(重遊奉元寺)」, 「또 벗들과 함께 시를 짓다(又與諸友共賦)」등을 남겼다. 위의 시에서 김려는 오랜만에 찾아온 절에서의 감회를 적고 있다. 특히 21세 때에 향로방(香爐方)에서 함께『중용』을 읽었던 광훈상인(廣訓上人)의 부재를 아쉬워하였다. 황덕길(黃德吉)도 광훈상인(廣訓上人)에 대해서 「記釋廣訓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절은 근대에 들어서도 여러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서 김옥균과 박영효 등 조선 근대화의 주역들이 긴밀하게 교류를 하기도 하였고, 백범 김구 선생도 인천 감옥에서 탈옥해서 이곳에 머물며 후일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곳에 가면 추사 김정희의 글씨 현판 ‘청련시경(靑蓮詩境)’과 '산호벽수(珊瑚碧樹)', 그리고 청나라 옹방강의 글씨 현판 ‘무량수각(無量壽閣)’ 한 점이 있다. 대웅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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