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洗劍亭), 칼을 물에 씻은 정자
세검정(洗劍亭), 칼을 물에 씻은 정자
세검정(洗劍亭)은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新營洞)의 시냇가에 있는 정자다. 세검정의 창건에 대해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첫째, 연산군 12년(1506)에 왕명으로 장의사(藏義寺)를 철거하고 이 일대를 왕의 놀이터로 만들었다고 한다. 둘째, 숙종 37년(1711)에 북한산성을 축조하고 그 수비군들의 쉼터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셋째, 영조 23년(1747)에 총융청(摠戎廳)을 창의문 밖 탕춘대로 옮기고 세검정을 지어 군사들의 쉼터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세검정이라는 이름은 ‘검을 씻는다.’라는 의미로 인조반정과 관련이 깊다. 인조 반정(仁祖反正) 때 이귀(李貴, 1557~1633)ㆍ김류(金瑬, 1571~1648) 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모의하고, 거사 후 이곳의 맑은 물로 칼을 씻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세검정은 세초(洗草)하던 곳이기도 하다. 세종은 이곳에 종이 만드는 공장인 조지서(造紙署)를 세웠다. 세초가 끝나면 왕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었는데 이를 세초연(洗草宴)이라고 하였다. 세검정은 1941년 옆에 있던 종이공장에 불이 나서 함께 사라졌다가, 정선의 그림에 따라서 1977년에 다시 지어졌다.
검 씻던 일 어느 해 일이었던가
난간 기대 이 날 심정 떠올려보네.
푸른 구름 끊긴 골에 머물러 있고
폭우는 높은 성을 넘어 오누나.
두건과 신에 구름 기운 맺혀 있었고
잔과 술병 물소리에 압도되었네.
저녁 해 저무는 것 시름을 마오
밝은 달빛 앞길에 가득할 터니
洗劒何年事 憑軒此日情
蒼霞棲斷壑 白雨度高城
巾屨承雲氣 杯罇壓水聲
莫愁西景暮 淸月滿前程
홍직필(洪直弼),「세검정에서[洗劒亭]」
옛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을 찾아가면, 그때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된다. 마침 세검정에 찾아간 날에 구름은 잔득 끼어 있었고, 세찬 비는 몰려오고 있었다. 두건이며 신발이며 할 것 없이 구름 기운에 축축해졌고, 물이 불어나 세차게 주변을 울려댄다. 비가 오는 정자는 그야말로 운치가 넘친다. 이제야 흥이 올라 술을 마시려 하니 날 저물었다 돌아가자 흥을 깰 것이 없다. 일행들이 돌아갈 때는 밝은 달빛이 집까지 인도해 줄 것이니 말이다.
이 정자 못 와본 지 이미 십년 흘렀는데,
다시 와보니 옛날처럼 바위와 샘이 좋네.
상감께서 어가를 머물렀다 공손히 들었는데
다시 장군 잔치 베풀었다 말을 하네.
계곡 입구 맑은 안개 난간 너머 희미한데,
산머리 지는 해는 처마 앞 다가왔네.
성 안에 한번 들자 옷에 먼지 가득하니,
오히려 시내가 저자에 막힌 것 한스럽네.
不到玆亭已十年 重來依舊好岩泉
恭聞聖主紆仙蹕 復道將軍設舞筵
谷口晴烟迷檻外 山頭落日在簷前
城中一入衣塵滿 猶恨淸流隔市廛
심익운(沈翼雲), 「세검정에서[洗劒亭]」
10년 만에 세검정을 다시 찾았다. 여전히 예전처럼 풍경들이 좋았다. 이곳은 상감이 어가를 머물러 있기도 하고, 장군들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과 관련된 일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그는 오랜만에 찾은 이곳을 해질녘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도성 안에 있게 되면 온갖 일과 관계에 얽히게 된다. 자주 이곳을 찾아 시냇물에 몸에 잔뜩 묻은 속기를 씻고 싶지만 그마저도 자주 허락되는 호사는 아니었다. 불우한 그의 삶과 연결시켜 보면 7,8구는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풍경은 아름답지만 마냥 아름다움을 누릴 수 없는 복잡한 심사를 보여준다.
높은 성 복도는 어렴풋이 보이는데
진종일 시내 정자 속된 사람 드물구나.
바위는 흥건하고 온 숲은 촉촉한데
요란한 물소리가 몇 봉우리 날아가네.
어두운 골짝에는 한가로이 말을 매고
바람 치는 격자창에 고이 옷 걸어뒀네.
우두커니 한참 앉아 있기에 좋다 보니
시를 다 짓고서도 가자고 하지 않네.
層城複道入依微 盡日溪亭俗物稀
石翠淋漓千樹濕 水聲撩亂數峯飛
陰陰澗壑閒維馬 拍拍簾櫳好挂衣
但可嗒然成久坐 不敎詩就便言歸
정약용, 「세검정에서 놀며[游洗劍亭]」
다산은 세검정을 유달리 좋아해서 여러 편의 시문을 남긴 바 있다. 특히 1791년 31세 때에「游洗劍亭記」라는 명문(名文)을 썼다. 비오는 날의 세검정에 대한 묘사가 인상 깊은 글이다. 위의 시는 1795년 6월 11일 중복 이후에 지인들과 함께 세검정으로 물 구경을 가서 지었다. 계곡에서 밀려오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것은 그야말로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비가 와도 비가 그쳐도 떠나기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유본예의『한경지략』에도 세검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도 역시 비가 내리면 장관이라 사람들이 물 구경을 하러 온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너럭바위에 아이들이 와서 글자 연습을 하느라 돌 위에는 항상 먹물 자국이 남아 있고, 여기서 거슬러 올라가면 동령폭포(東嶺瀑布)가 나온다 하였다. 이 일대에는 탕춘대, 백사실 계곡, 현통사, 무계정사(武溪精舍) 터, 현진건 선생의 집터도 있다. 비가 오면 세검정은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서 한참 머물다 돌아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