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10

탕춘대(蕩春臺), 봄을 만끽하는 누대

by 박동욱

탕춘대(蕩春臺), 봄을 만끽하는 누대

탕춘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홍제천 계곡 옆에 있던 누대이다. 연산군 11년(1505) 이곳에 탕춘대를 마련하고 미희들과 놀았다. 아마도 예전에는 매우 화려한 장소였을 것이다. 탕춘(蕩春)은 정확한 의미를 알기는 어려우나, ‘봄을 만끽하다’ 정도의 뜻으로 생각된다. 영조 27년(1751) 가을에 영조는 탕춘대에 거둥하여 활쏘기로 무사를 뽑고, 29년(1753)에 탕춘중성(蕩春中城)을 새로 쌓았다. 30년(1754)에 탕춘대라는 이름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여 연융대란 이름으로 고치고, 홍상서(洪尙書)를 시켜 신영동 172번지 세검정 위 길가에 있는 바위에 ‘연융대(鍊戎臺)’ 석 자를 새겼다. 현재 탕춘대가 있었던 곳에 탕춘대터라는 표석만이 남아 있다.



탕춘대 터 사진.jpg


옛날에 상감께서 자주 행차 하실 때엔,

산빛 어린 단청 건물 음악 소리 가득 터니

지금은 적막하게 거친 시골길 되어서,

한식날 놀이꾼도 꽃 보지 못하였네.

昔日君王巡幸多 照山丹碧貯笙歌

如今寂寞荒村路 寒食遊人不見花

백광훈(白光勳),「탕춘대에서[蕩春臺]」


어떤 임금이 행차가 잦았는지는 특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곳은 화려한 건물에 풍악 소리가 울려 퍼져서 흥성거리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기억들이 무색하게 변해 버렸다. 한식날이면 봄꽃 구경에 안성맞춤이었지만, 지금 이곳에는 꽃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변주다. 같은 장소의 달라져 버린 낙폭만큼이나 비감(悲感)은 커진다.




북문으로 나가서 맘껏 노는데

맑은 바람 옷깃에 불어 대누나.

아름답구나 탕춘대여!

수석이 푸른 숲에 비추어대네.

이끼 낀 벼랑에는 남몰래 방울지고,

바람 부는 절벽에선 저절로 소리 나네.

풍경 모두 낮인데도 적막하였고

나무꾼 노래는 먼 산에 은은했네.

소나무 개울은 얼마나 아득한가

오솔길은 찾아낼 길이 없었네.

出北門遨遊 淸風吹我襟

佳哉蕩春臺 水石映翠林

苔崖暗垂滴 風壁自成音

雲物俱晝寂 樵歌隱遙岑

松川杳何許 微徑不可尋

김창립(金昌立),「탕춘대에 나가 놀다[出遊蕩春臺]」


탕춘대는 수석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벼랑과 절벽을 묘사함으로써 산속에 위치한 경관이란 사실을 부각했다. 낮인데도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고, 나무꾼 소리만이 먼 산에서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남구만의「蕩春臺 癸卯」에서 “도성문이 가깝다고 말하지 말라, 속세의 나그네 수레 드물다오[莫道城闉近, 猶稀俗客輪]”라 나온다. 당시에도 탕춘대는 도성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지만, 인적이 드문 공간이었다.



우연히 여러 사람 이끌고서는

옛날부터 벼르던 일 회포 풀었네

맑은 물에 술잔을 전하였는데

폭설이 시 짓는 일 괴롭게 하네.

도성 먼지 가까운 줄 알지 못하니

영락없는 깊숙한 신선 세계네.

해가 지는 데에도 미련이 남아

말 세워 봉우리들 바라다보네.

偶爾携諸子 悠然會夙心

淸流傳小杓 急雪惱新吟

不覺城塵近 渾疑洞府深

斜陽有餘戀 立馬望千岑

이식(李植), 「탕춘대(蕩春臺)에서 노닐다. 계축년[遊蕩春臺 癸丑]」


예전부터 한 번쯤 찾아와야지 하고 벼르고 벼르다가 사람들과 함께 탕춘대에 오게 되었다. 아마도 눈이 몹시도 내리던 날이었던 모양이다. 몸을 덥히려 술잔을 돌리지만 눈이 펑펑 내려서 시 짓는 일은 쉽지 않았다. 탕춘대에 대한 감회는 도성에서 가깝게 위치해 있지만 쉽게 발길이 향하는 곳은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막상 와보니 실제로 신선이 사는 세계처럼 느껴졌다. 해가 지는데도 계속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고 주변 산들을 여기저기 둘러본다. 그는 다시 이곳을 찾아왔을까?

탕춘대의 모습은 정제두(鄭齊斗)가 쓴「탕춘대기(蕩春臺記)」에 자세히 보인다. 그는 이곳의 풍경을 상세히 적으며 절승(絶勝)이라 평가했다. 유본예의『한경지략』에서도 봄나들이 가기 좋은 곳으로 이곳을 꼽고 있다. 탕춘대는 6호선 전철 독바위역에 내려서 북한산에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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