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도(楮子島), 앵두가 맛있었던 작은 섬
저자도(楮子島), 앵두가 맛있었던 작은 섬
저자도는 서울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위치했던 섬이다. 닥나무가 많아서 저자도란 이름이 붙여졌다. 고려 말 한종유(韓宗愈)의 별장이 있었다. 이후에도 저자도에는 여러 명가(名家)의 별장이 들어섰다. 17세기 전후에 이안눌(李安訥)과 권필(權韠)이 구용(具容)과 허회(許淮)의 별장을 찾아 시를 지었다. 그 뒤 허회의 아들 허격(許格, 1607∼1690)도 대를 이어 저자도에 은거하면서, 그의 별장이 후대에 오래 기억되었다. 17세기 후반 저자도는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그는 저자도에 대해서「楮島漫詠」,「玄城漫詠」,「玄城雜詠」등 많은 연작시를 남겼으니, 저자도에 관한 한 가장 많은 시를 남긴 작가라 할 수 있다.
저자도의 특산물은 앵두였다. 허균(許筠)의『도문대작(屠門大嚼)』에 “저자도에서 생산되는 앵두가 작은 밤만큼이나 크고 맛이 달다[櫻桃, 產楮子島者, 大如小栗, 味甘]”라 나온다. 오광운(吳光運)의「강 길(江路)」이라는 시제(詩題)에 부기된 내용에 “저자도에는 앵두나무 숲이 있어 해마다 임금님께 바친다[楮子島有櫻桃藪, 每年供御]”고 나오니 앵두를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박(姜樸)은「舟行前雜詠」에서 “집집마다 앵두나무 있어서 저자도 모래톱인 줄 먼저 알겠네(戶戶櫻桃樹 先知楮子洲)”라 하였다. 저자도의 앵두는 이렇듯 유명하였다. 사람들은 저자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큰 아이가 책 읽는 난간으로는
강물 세차게 콸콸 흘러오누나.
봄 물결 팔팔 뛰는 물고기 소리
마음 속 졸렬함을 부수어주네.
大兒讀書軒 江水來活活
春波躍魚聲 打破胸中拙
김창흡(金昌翕), 「저자도의 춘첩자(楮島春帖)」
김창흡이 1688년에 봄을 맞아 저자도의 별장에 붙인 춘첩자다. 아이가 책을 읽는데 난간 너머로는 한강물이 세차게 흘러 들어온다. 그 물결 속에 파닥파닥 생명력을 뽐내는 물고기 소리도 함께 들렸다. 글 읽는 소리, 강물 소리, 물고기 소리 살아 있는 것들의 하모니는 마음속에 못나고 어리석은 생각들을 일거에 사라지게 해주었다. 그는 1687년 8월에 저자도의 현성(玄城)이라는 곳에 정자를 지었고, 1686년부터 1686년까지 3년 간 저자도에서 살았다.
굽은 물가 날이 개자 연꽃이 피었는데,
물과 구름 속에 아득히 절 보이네.
조각배 흥에 겨워 먼 줄도 모르는 채
곧장 문에 닿고 보니 산 위 달 기울였네.
曲渚新晴蓮子花 水雲遙指梵王家
輕舟乘興不知遠 直到門前山月斜
백광훈(白光勳),「저자도(楮子島)」
저자도 물굽이에는 날이 개자 연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여기에서 바라보니 멀리 봉은사가 보인다. 흥이 나자 배로는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조각배에 몸을 맡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절 문에 도착하니 이미 달이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시인의 흥취가 잘 드러난 시이다. 또, 백광훈은 저자도 북대(北臺)에 있는 주막을 묘사하면서「저자도 북대에서 문중길에게 주다 이름은 몽원이다(楮子島北臺 贈文仲吉 名夢轅)」에서 “춘삼월 강마을은 여기저기 꽃펴있고, 술 자랑할 술집 깃발 꽃 위에 많이 걸려 있네(三月江村處處花 靑旗誇酒出花多)”라 하였다.
구름 속에 광릉의 마을 있었고,
안개 속엔 저자도 나무 있었네.
늦개인 날 높은 누대 기대어서니,
저물녘 강 하늘이 서글프구나.
雲際廣陵城 烟中楮島樹
高樓倚晩晴 惆悵江天暮
이서구(李書九),「늦게 갠 강가 누대에서(江樓晩晴)」4수 중 세 번째 시
누대에서 저자도 일대의 풍광을 읊고 있다. 저물녘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느껴지는 까닭 모를 애상(哀傷)을 회화적으로 그려냈다. 이처럼 저자도는 인근에 있던 광릉과 봉원사 등과 자주 함께 읊어지곤 했다.
유본예의『한경지략』에는 저자도에 대해 “삼전도 서쪽에 있다. 고려 때 한종유가 이곳에 별장을 두었다. 우리 왕조 세종대왕께서 이 섬을 정의공주에게 하사하셨고, 공주의 아들인 안빈세에게 전하여 소유하였다. 지금 국법에는 두 번째 기우제는 반드시 이 섬에서 지내야 한다”라고 나온다. 이처럼 이곳은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종묵 교수는 저자도의 위치를 새롭게 비정하고 있어 참고가 된다. 그 이전에는 무동도(舞童島)와 저자도가 구별없이 쓰였지만, 18세기 무렵에는 무동도가 저자도와 구분되어 기록에 나타난다. 이때의 저자도는 삼성동에 있던 섬이지만 무동도는 잠실섬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뀐다. 19세기 중반 무렵 원래의 저자도는 육지가 되었고, 뚝섬 인근에 새로 형성된 섬이 저자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25년 을축 대홍수 때 저자도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가 1970년 강남 지역에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 골재를 채취하면서 섬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금은 저자도 표지판이 지하철 3호선 옥수역 아래 저자도가 있었던 지점을 바라볼 수 있는 한강변에 설치되어 있다. 세월은 무정하게도 멀쩡한 섬도 자취를 감추게 만들어 버리고 안내표지판만 남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