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景福宮), 큰 복을 받은 궁절
경복궁(景福宮), 큰 복을 받은 궁절
서울의 중심은 광화문과 경복궁이라 할 수 있다. 경복궁은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1392년에 조선이 개국하였고, 3년 뒤인 1395년에 왕실이 경복궁으로 들어왔다. 경복궁이란 이름은 정도전이 붙였는데,『시경』에 “마음껏 취하고 덕으로 배가 불렀도다, 군자는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구절에서 큰 복을 뜻하는 마지막 두 글자를 따온 것이다.
창건 직후부터 주요 전각들이 불에 타고 무너지는 사건들이 속출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해인 1592년에 경복궁은 완전히 전소되어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1865년 중건이 되었다가 일제에 의해 다시 크게 훼손되어 몇 개의 전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헐리고 말았다. 이처럼 경복궁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높은 철옹성은 천 길이나 되고
구름 속 봉래산 궁궐은 오색이 찬란하네.
해마다 상림원에선 꾀꼬리 울음에 꽃이 피고
해마다 도성 사람 즐겁게 노닌다네.
城高鐵甕千尋 雲繞蓬萊五色
年年上苑鶯花 歲歲都人遊樂
정도전(鄭道傳), 「신도 팔경의 시를 올리다[進新都八景詩]」8수 중 2번째 시
이 시는 1,2구에서는 궁궐을, 3,4구에서는 궁원(宮苑)을 각각 노래하고 있다. 천 길이나 되는 높이에다, 신선들의 궁궐처럼 오색구름이 감돌고 있었다. 궁궐의 모습은 과장되고 환상적으로 그려졌다. 상원은 궁중의 정원이어서 백성들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인데 이곳에서 해마다 도성에 사는 사람들이 찾아와 노닌다고 하였다.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여민락’(與民樂)의 뜻을 담아서 이상적인 정치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궁궐 집 남은 터 물어도 분간 못하는데
서쪽으로 나는 제비 석양빛 등을 졌네.
대궐 길에 봄풀이 돋은 것이 상심되니
어느 때 궁궐 지어 회복을 하겠는가.
宮院遺基問莫分 西飛紫燕背斜曛
傷心輦路生春草 恢復何時建殿門
정희맹(丁希孟, 1536∼1596), 「경회루 상춘시에 차운하다[次慶會樓傷春韵]」
이 시는 폐허가 된 직후의 경복궁을 노래하고 있다. 정희맹은 임란 때 의병으로 활약했으니 폐허로 변한 경복궁의 모습을 보는 감회가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도무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궁궐에는 해질녘 제비만이 무심하게 날아가고 있다. 그새 봄풀이 대궐을 덮고 있으니 어느 때에 경복궁이 다시 재건되는지 아득하기만 했다. 이러한 상태는 약 270년간 계속되었다. 홍세태(洪世泰, 1653~1725)는「경복궁을 지나며 감회가 있어(過景福宮有感)」에서 “누대 터는 오래되어 주춧돌에 이끼 끼고, 기러기 울음 잦아드는데 잡초 풀만 가득하네.”(樓臺地古苔生礎, 鳧鴈聲殘草滿池.)라고 했다.
비원의 봄빛은 간의대가 좋다하여
날마다 유람객들 술 가지고 온다더군.
병든 난 가엾게도 대문 홀로 닫아걸고
취해서 고성방가하며 오는 소리 그저 듣네.
上林春色簡儀臺 日日遊人佩酒來
病客自憐門獨掩 但聞扶醉放歌廻
김창집(金昌集, 1648∼1722), 「근래 듣자니 경복궁에 꽃구경하는 행차가 많다고 한다[近聞景福宮多有賞花之行]」
17세기에 들어서 경복궁은 완전히 유희의 장소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간의대(簡儀臺)는 경회루(慶會樓) 북쪽에 돌로 축대를 쌓고 천문을 관측하던 대 이름이다. 이 장소가 상춘(賞春)하기에는 그만이어서 술을 마시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김창집은 병 때문에 경복궁에 꽃구경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시에 담았다. 그렇게 대신과 비빈들로 북적거려야 할 궁궐은 취객의 놀이터로 바뀌고 말았다.
……
임란 때 사라진 지 이백년 지나서는
궁전의 남은 터만 분명하게 남았다가
아! 아름다워라 장한 사업 선대업적 빛냈으니
이 몸이 성군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
龍蛇蕩掃二百載 宮殿遺址歷歷分
於休盛烈光先業 何幸身親遭聖君
조면호(趙冕鎬), 「장생로(長生路)」
경복궁은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드디어 1865년 중건에 착수하게 되었다. 조면호는 당시의 중건 경과를 장편 고시로 써내려 갔다. 이 시에서는 공사를 처음 시작하던 때의 의욕적인 분위기와 함께 공사가 진행되면서 생기는 어려움도 그리고 있다. 위의 시는 거의 마지막 부분인데 여기에서는 경복궁이 중건되는 기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경복궁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멀쩡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영광과 치욕이 함께 있었다. 새 왕조의 영광을 누렸고 전란에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으며, 오랜 기간 방치되어 취객들의 놀이터가 되었다가 새 희망을 품으며 중건(重建)이 이루어졌지만 일제 침략에 훼손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 경복궁은 다시는 상처를 입지 않을 것처럼 한복을 입은 빛나는 청춘들이 궁궐을 수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