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사동(北寺洞), 복사꽃이 아름다운 동네
북사동(北寺洞), 복사꽃이 아름다운 동네
유본예의『한경지략』에는 “혜화문 밖에 있다. 옛날에 묵사가 있었던 곳이어서 묵사동이라고도 부른다. 또 어영청의 북창이 이곳에 있어서 북둔이라고도 부른다. 맑은 냇물을 낀 기슭에 사는 사람들이 복숭아 심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매년 늦봄이면 놀러 온 사람들의 수레와 말이 산골짜기 사이에 가득 찼으며, 또한 정갈하고 깨끗한 초가집도 많이 있었다. 박제가의「성시전도」에서 ‘가엾어라 도성 북둔의 풍속이여. 복사꽃 심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라 나온다.
북사동은 지금의 성균관대학교 뒤편 성북동 일대를 말한다. 북사동은 묵사동(墨寺洞), 북둔(北屯), 북저동(北渚洞), 북적동(北笛洞) 등으로 불렸다.『동국여지승람』에서는 “민간에서는 도화동(桃花洞)이라 부른다”라고 나오지만 『한경지략』에는 도화동은 다른 동네로 항목이 따로 설정되었으며 위치는 북악 아래에 있다고 나온다. 이 기록에 따르면 북사동과 도화동은 전혀 다른 곳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복숭아를 팔아 생계를 꾸렸고, 이 동네는 복사꽃이 아름다웠다.
동쪽 교외 버들이 푸르게 나루를 비추면
북저동 복사꽃 천만 그루에 봄이 오네.
복사꽃은 짙고 엷게 시내와 함께 자라나고
연기 나는 몇 집 절로 이웃을 이루었네.
신선도 아닐 테고 은자도 아니지만
저마다 꽃 가꾸고 과실 심는 사람이네.
꽃 피면 그 동네 사는 사람만 보지 않고
온 도성 거마들이 먼지를 일으키네.
익은 과일 동네 사람 먹지 않고 내다 파니
몇 그루만 있다 해도 한 집 가난 구제하네.
생계는 농사 양잠하는 집과 똑같지만
사람들 은거하는 백성들로 간주하네.
나무 심어 해마다 이윤 점점 늘어나니
오곡 흉작 된다 해도 아무런 상관없네.
탁군에서 채소 심다 진정한 영웅 되고
성동에서 돼지 치다 천하 경륜했다지.
지사(志士)나 고인(高人)은 등용되기 어려우니
초야의 신하로 사는 것도 무방하리.
東郊楊柳綠暎津 北渚桃花萬樹春
桃花深淺與溪長 數家烟火自作鄰
不是神仙不是隱 箇箇栽花種果人
花發居人不獨看 滿城珂馬蹴香塵
果熟居人不自食 幾樹能濟一家貧
理生不殊農蚕家 使人看作林泉民
種樹年年利漸滋 五穀匈歉不關身
涿郡種菜眞英雄 城東牧豕亦經綸
志士高人未易用 不妨身作草莾臣
강준흠(姜浚欽),「북저동(北渚洞)」
신선처럼 은자처럼 살고 있는 이 동네 사람들은 복숭아를 심어 생계를 잇고 있었다. 농사에 목을 맨 것이 아니라 특용작물 재배에 눈을 돌린 셈이다. 곡식 농사에 치중하지 않았으니 흉년에도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매해 복숭아를 팔아 수입은 점점 늘어났다. 유비는 채소를 심었지만 영웅이 되었고, 공손홍(公孫洪)은 돼지를 쳤지만 최초의 태학을 설립했다. 여기 사람들은 복숭아를 심으며 살아가고 있다. 꼭 세상에 등용되어 쓰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이 초야에서 살아가면 그뿐이다. 북저동에는 복사꽃 때문에 사람들이 붐볐고, 복숭아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먹고살았다.
동네 안에 복사꽃 흐드러지고
마을 속에 시냇물 급히 흐르네
가지 헤치면 소매 향기가 배고
바위에 서면 그림자 못에 비치네
눈이 취했는데 어찌 술이 필요하랴
정신 팔려 시 지을 짬도 없었네.
유람객들 밤낮으로 시끄러우니
모두가 태평 시절 즐기고 있네.
洞裏桃花滿 村中澗水馳
拂枝香襲袂 臨石影搖池
眼醉何須酒 神癡未暇詩
遊人喧日夕 俱是樂平時
윤기(尹愭),「북저동(北渚洞)」
북저동을 다룬 시에서는 역시 복사꽃이 빠지지 않는다. 이곳에 오면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서 술도 필요 없을 정도였고, 멋진 풍경에 빠져 시를 지을 겨를도 나지 않았다. 무언가 하지 않고 있어도 그저 좋은 그런 곳이었다. 봄이면 밤낮으로 상춘객들이 찾아와서 도화동 경치를 즐겼다.
도성 문 가까우나 세상 번뇌 끊겼는데,
지팡이로 흐르는 물의 원천 찾아왔네.
괴이한 돌, 큰 솔 있는 성 아래의 길이고
나는 꽃 우는 새 있는 골짜기 안 마을일세.
뜬 인생 일없어도 천년을 근심하나,
지는 해 다정히도 술 한 통 비추노라.
맑은 복 알고 보면 하늘이 아끼는 거니,
봄바람 부는데 한가히 몇 곳의 이름난 정원 잠겨 있네.
都門只尺絶塵喧 短杖來尋活水源
怪石長松城下路 飛花啼鳥洞中村
浮生無事憂千歲 斜日多情照一樽
淸福知應天所惜 春風閒鎖幾名園
변종운(卞鍾運),「북저동(北渚洞)」
북저동은 도성에서 가까운 위치였지만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돌과 소나무, 꽃과 새들이 펼쳐져 있었다. 소소한 근심일랑 다 잊어버리고 저물녘까지 술을 마시며 자리를 지켰다. 이곳은 특히나 일관정(一觀亭), 오로정(吾老亭) 등과 같은 별서가 많이 있었는데, 주인들이 자신만의 청복(淸福)을 누리려는지 단단히 잠가 놓았다.
이곳을 유람하고 지은 유기(遊記)로는 서형수(徐瀅修)의「북적동(北笛洞) 유람기(遊北笛洞記)와 채제공(蔡濟恭)의「북저동 유람기(遊北渚洞記)」가 있어 이곳의 아름다운 경관을 소개하고 있는데, 지면 관계상 다 소개하지 못한다.
서유구의「절신상락(節辰嘗樂)」에는 “우리 동국 서울에서의 꽃구경은 필운대(弼雲臺)의 살구꽃, 북적동(北笛洞)의 복사꽃을 최고로 친다. 그래서 매년 3월이 되면 버드나무를 따라 꽃을 찾는 이들이 여기에 모이는 경우가 많으니, 곳곳의 주인들이 능히 동산에 물을 주고 정원을 가꾸어 대나무 사립을 두르고 정자에 초가지붕을 새로 이어 빈객을 맞이한다.”라고 나온다. 이제 성북동은 더는 복사꽃으로 유명하지 않다. 사람들이 꽃구경하러 이곳을 찾지도 않는다. 그렇게 옛사람들의 아름다운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