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20

동작나루(銅雀津),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곳

by 박동욱

동작나루(銅雀津),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곳


동작 나루는 ‘동작진(銅雀津)’ 또는 ‘동작도(銅雀渡)’라고 하였는데, 동작구 동작동에 있던 나루터다. 현재 반포아파트 서편 이수천 입구에 해당한다. 조선 후기에 발달한 도선장으로, 예전에는 수심이 깊었다고 한다. 이곳은 남태령을 넘어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이용하였다. 동작대교의 건설로 그 기능이 상실되었다.


장시흥, 노량진, 고려대박물관.jpg 장시흥, 노량진, 고려대박물관


계책은 밝은 조정 보탬 되지 못하였고

출처는 사우들의 조롱 그저 깊게 하네.

이 강을 건너려니 유달리 시무룩하니

오색구름 가깝지만 흰 구름 멀어서네.

謀猷未補聖明朝 出處徒深士友嘲

欲渡此江偏惝怳 五雲雖近白雲遙

임영(林泳),「동작 나루를 건너다[渡銅雀津]」


이 시는 동작 나루를 건널 때의 심경을 다루고 있다. 이 나루터에서 험난한 강물을 헤치고 건너면 위태로운 환로(宦路)에 접어들게 되니 마음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내가 출사(出仕)하면 조정에는 무슨 도움이 될 것이며, 친구들은 자신의 선택에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오색구름은 제왕의 처소를, 흰 구름은 어버이가 계신 곳을 각각 의미한다. 무엇보다 도성에 가까울수록 부모님이 계신 곳과는 멀어지게 되니, 이것이 가장 마음에 걸리었다.


장시흥, 동작촌, 17×21.6, 종이, 18세기, 고려대박물관.jpg 장시흥, 동작촌, 고려대박물관




나루터에서 멀리 배가 떠가서

백사장서 말 세우고 바라보자니,

흰머리 늙으신 모습 마음에 품고

갖옷 얇아 봄추위도 염려되었네.

어슴푸레 일산은 펄렁이는데,

아스라이 푸른 산 마주하였네.

교자 앞서 한 잔 술 마시는 것은

그야 물론 이별하기 어려워서네.

渡口移舟遠 沙頭立馬看

鬢凋懷暮景 裘薄念春寒

杳杳飜華蓋 迢迢對碧巒

轎前一杯酒 應爲別離難

정약용, 「동작 나루에서 진주로 돌아가시는 부친을 전송하며 【임자년이다. ○ 이때 공삼 차원(貢蔘差員)이 되어 떠나셨는데 정월이다. 이 작별이 끝내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銅雀渡, 送別家君還赴晉州 【壬子○時因貢蔘差員之行, 正月也. 此別遂爲永訣】)」


이 시는 다산이 1792년 31세 때 동작 나루에서 아버지를 전송하며 쓴 것이다. 말을 세워 놓고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아버지가 이렇게 늙었나 마음 아팠고, 얇은 옷에 아버지가 추울까 걱정이 됐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술 한 잔을 마셔본다. 나루터에서 잠시 간의 이별을 아쉬웠는데, 갑작스레 정재원이 세상을 떠나 영영 이별이 되고 말았다.

「銅雀渡」는 1779년 18세 때 감시(監試)에서 낙방하고 아내와 함께 아버지가 계신 화순으로 내려가는 길에 동작 나루를 건너며 쓴 것이고,「行次銅雀渡」는 1790년 29세 때 귀양을 가다가 동작 나루에 이르러 쓴 것이다. 또,「有嚴旨出補金井道察訪, 晩渡銅雀津作」은 1795년 34세 때 금정도 찰방에 보임한다는 유지를 받들고 동작 나루를 건너며 쓴 것이고,「夜過銅雀渡」는 1801년 40세 강진으로 귀양을 떠나는 길에 동작 나루를 지나며 쓴 것이다. 다산에게 있어서 동작 나루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낙방, 귀양, 친족과의 이별 등 다양한 일들을 경험한다. 그에게 동작 나루를 건너는 것은 삶의 중요한 변곡점을 통과하는 것과 같았다.


정선, 동작진.jpg 정선, 동작진


차고 붉은 한양 나무 서리 무늬 끼었는데

삐걱삐걱 빈 배에는 놋소리 부산하네.

오리 저편 물결은 순식간에 핀 꽃이요

말 머리의 구름은 날아온 봉우리네.

신발에 튕기는 자갈밭 어느 때나 다하려나

부채 치는 금빛 모래 온종일 날리었네.

주막에서 옷 갈아입고 도성 길 재촉하니

오랜만에 돌아온 손 즐거움 없겠는가.

冷紅京樹著霜紋 霍霍空船櫓響勤

頃刻花惟鳧外浪 飛來峯是馬頭雲

鞋彈錦石何時了 扇拍金沙竟日紛

水店更衣催趁郭 旋歸久旅得無欣

이덕무, 「동작진(銅雀津)」


이 시는 이덕무 특유의 참신함을 느낄 수 있다. 1, 2구는 나무의 모습과 노 젖는 소리를 그려내며 촉각과 시각, 청각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이 시의 압권은 3, 4구이다. 오리 너머로 보이는 물결을 순식간에 핀 꽃에다, 말 머리 앞에 있는 구름을 날아온 봉우리에 각각 빗댔으니 묘사가 참으로 기가 막힌다. 발에는 자갈이 계속 부딪히었고, 얼굴에는 모래가 계속 날라왔다. 7구의 갱의(更衣)는 ‘소변을 보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오랜만에 도성에 돌아오게 된 설레는 심정을 이렇게 시에 담았다.

동작 나루는 많은 사람이 이용했던 나루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나루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지하철 4호선 역 이름으로만 기억되며, 무수한 사람이 지하철을 통해 무심하게 지나고 있다.



동작리 김학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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