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23

천우각(泉雨閣), 더위를 식혀주는 누각

by 박동욱

천우각(泉雨閣), 더위를 식혀주는 누각


유본예의 『한경지략』에는 “천우각은 남산 아래에 있으니, 남별영 소속 관청 건물이다. 계곡에 걸쳐 누각을 세워서 여름철에 피서할 만하다. 석벽에 '아계(丫溪)' 두 자가 새겨져 있다.”라 나온다. 천우각(泉雨閣)은 금위영(禁衛營)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관이나 귀인들이 여기를 찾아와서 더위를 식히곤 했다. 서울시 중구 필동의 남산골공원에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南山골 韓屋마을)에 천우각을 복원해 놓았다.


천우각 김윤겸, 「천우각 금오계첩」, 21.6×33, 종이, 경기도 박물관.jpg 김윤겸, 「천우각 금오계첩」, 21.6×33, 종이, 경기도 박물관





은 안장 하얀 말이 버들 물가 매어 있는데,

금빛 날개 노란 꾀꼬리 나무 가려 앉을 때였네.

귀한 손님, 이름난 관리 와서 더위를 피하니

삼복에도 덥지 않아 가을인가 싶었다네.

銀鞍白馬垂楊湄 金翅黃鸝選樹時

貴客名官來避暑 三庚不熱九秋疑

강세륜(姜世綸), 「천우각(泉雨閣)」


천우각 주변에 있던 말과 꾀꼬리는 은빛, 흰색, 금빛, 노란색 등 각양각색으로 화려하게 묘사되었다. 고관이 타고 온 말은 버드나무에 매어 있었고, 꾀꼬리는 뜰에 있는 나무에 울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함부로 찾아올수 있었던 장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는 귀인이나 고관들이 더위를 피해 왔다. 더위가 한창일 때도 가을인가 싶을 정도로 서늘하였다.




산을 보다가 깜빡 잠에 빠져서

산이 가까이 온 줄 전혀 몰랐네.

산바람이 몇 번쯤 불어오더니

두건 가득 솔방울 떨어져 있네.

看山忽高眠 不覺山近人

山風吹幾番 松子落滿巾

-박준원(朴準源, 1739-1807), 「천우각(泉雨閣)」


누각에서 산을 보다가 설핏 잠에 들었다. 잠들기 전에는 산이 그렇게 가까운 줄도 모르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새 바람이 훅하고 불어댔는지 벗어놓은 두건에 가득하게 솔방울이 떨어져 있다. 산이 소중한지 모르고 있다가 산이 내게 와서 먼저 말을 붙였다.




십사 년 전 이곳에 유람을 왔었는데

그동안 인간의 일 모두 다 아득하네.

푸른 산 무성하고 깊숙한 샘 우는데

푸른 나무 가을매미 또 가을 알리었네.

十四年前此地遊 中間人事摠悠悠

蒼山欲皺幽泉咽 碧樹寒蟬又一秋

홍직필(洪直弼), 「천우각은 차계 가에 있다. 정사년(1797, 정조21)에 계부를 모시고 왔었는데 경오년(1810, 순조10) 7월 21일에 또 익여를 데리고 오니, 옛날 유람하던 일을 회상함에 누구는 살아서 세상에 남아 있고 누구는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감정을 견딜 수 없기에 시를 지어 감회를 적다(泉雨閣在叉溪上. 丁巳陪季父至, 庚午七月卄一日又携翊汝至, 回想舊遊不堪存沒之感, 詩以識懷)」


천우각에 14년 세월이 흘러 유람을 다시 왔다. 14년 전에는 작은 아버지를 모시고 왔었고, 14년이 지난 지금에는 종형제인 홍익필(洪翼弼, 1777~1825)과 함께 왔다. 제목으로 보건대 작은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본디 천우각은 더위를 피하러 자주 찾는 곳인데 홍직필은 가을에 찾아왔다. 고즈넉한 천우각은 상념에 빠지게 만든다. 가을 매미는 얼마 남지 않는 삶이 아쉬웠던지 모질게 울어댄다. 매미를 보고서 인간 삶의 부질없음을 더욱 깨닫게 된다.




갠 날도 싸늘하게 비가 내림은

네 계절 돌 샘이 울어서이네.

텅 빈 산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

구름 피어 샘과 함께 흐를 뿐이지.

시든 버들 먼지 앉기 쉽다 하지만

높은 솔은 그늘 먼저 보내 준다네.

붉은 누각 여름날을 보내는 이곳

한 선비가 외론 매미 감상하누나.

晴亦泠泠雨 四時鳴石泉

山空何所有 雲出與之然

衰柳蒙塵易 高松送蔭先

朱樓消夏處 一士感孤蟬

박제가(朴齊家),「천우각에서 무관 이덕무와 함께 선(蟬) 자를 운자로 얻다[泉雨閣 仝懋官得蟬字]」


박제가는 입추 한낮에 이덕무와 함께 천우각을 방문하고 각자 시를 지었다. 이덕무가 지은 시는 「입추 낮에 박재선(朴在先)과 함께 천우각(泉雨閣)을 찾다(立秋之午 同朴在先 訪泉雨閣」이다. 샘에서는 비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곳은 버들과 소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매미 소리만 한참을 듣고 있었다. 천우각의 주변이 잘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천우각은 한여름에 더위를 식혀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은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있고 샘이 흐르는 곳이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사람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이곳을 찾았다. 산 속에 위치한 조용한 곳이어서 훌쩍 가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에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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