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24

서지(西池),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한 곳

by 박동욱

서지(西池),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한 곳


유본예의 『한경지략』에는 “서지는 돈의문 밖 모화관 옆에 있다.「여지승람」에서 ‘날이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내면 응험이 있다’고 하였다.”라 나온다. 이 책의 안설에 따르면, “경성의 여러 연못은 모두 장원서에 속해서 연밥을 거두어 왕실에 바치는데, 서지가 가장 넓어서 연꽃이 매우 성하다. 연못가에 천연정이 있다.”고 했다. 연지(蓮池)는 서지 이외에도 두 군데 더 있었다. 동지(東池)는 동쪽 성의 연동(蓮洞)에, 남지(南池)는 숭례문(崇禮門) 밖에 각각 위치해 있었다.

서지는 반송지(盤松池)라고도 불렸으며, 거기에 있던 천연정(天然亭)이란 정자도 유명했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는 한양의 명소를 소개하면서 천연정의 연꽃을 꼽기도 하였다. 1929년 서지(西池)를 매립하고 죽첨보통학교를 건립하였는데, 해방 후에 금화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지가 있던 천연동 일대.jpg


물결 속에 고기 뛰고 실구름 떠있는데

꽃 너무 아름다워 모든 꽃 살펴보네.

덩그렁 물속에 있어 광채가 아스라해

한 송이 꺾어 가나 향기 줍긴 어렵 다네.

맑은 가을 자줏빛 기운은 용검이 잠긴 듯

고요한 밤 금빛 줄기는 노반이 빛나는 듯

미인에게 주고 싶어 가져다 꽃을 차나

좋은 시절 저물어서 난간에 슬피 섰네.

浪開魚躍澹雲殘 寶萼英英萬卉觀

宛在水中流彩遠 搴歸木末拾香難

秋淸紫氣沉龍劒 夜靜金莖晃露盤

欲贈美人携結佩 芳華晼晩悵憑欄

이인상(李麟祥), 「7월 보름날 임매, 임과 형제 및 이윤영과 서지에서 연꽃을 완상하며 함께 연꽃을 노래한 시를 지었는데, 나는 여덟 수를 얻었다. 여덟 수 중에서 네 번째 수이다(七月望日 與任子伯玄邁,仲寬薖 兄弟,李子胤之胤永 賞荷西池 共賦荷花詩 余得八首 己未)」


1739년 7월 보름날에 이인상은 임매, 임과 형제와 이윤영과 함께 서지를 노래한 시를 썼다. 이윤영은 이날의 모임에 대해「서지에서 연꽃을 완상한 일을 기록하다(西池賞荷記)」란 글을 쓰기도 했다. 연못에서는 물고기가 뛰어 놀고 연못 주위에는 온갖 꽃들이 아름다웠다. 물속에 피어있는 연꽃을 그대로 두기 아쉬워 꺾어 오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향기까지 가져오지는 못했다. 분홍빛 연꽃이 피어 있는 것을 두고 용천검이 잠긴 것 같다고 했고 연잎 자루에 연잎이 달려 있는 것을 동반에 빗대기도 했다. 용천검이 잠긴 곳은 자기(紫氣)를 띠고 있어 자주빛 연꽃을 이렇게 말한 것이고, 동반(銅盤)은 한무제가 이슬을 받기 위해 건장궁에 세운 것인데 연꽃 줄기가 동반과 같아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서지, 이윤영, 연화도, 종이에 수묵담채.jpg 이윤영, <연화도>, 종이, 수묵담채


여름엔 많은 나무 우거져 있고

가을에는 연꽃이 못물에 있네.

옷깃 푸니 바람이 곧 들어오고

베개를 베니 해는 천천히 가네.

앞 못물 빛이 눈에 가득했는데,

지난해 노닌 일에 마음 아팠네.

초대 받고 서글프게 바라다보니

이 인생 덧없음을 진정 알겠네.

槐柳千章夏 芙蕖一水秋

解衣風正入 高枕日徐流

滿眼前池色 傷心去歲遊

招邀兼悵望 眞覺此生浮

이가환(李家煥), 「서지에서 연꽃을 감상하며 정범조가 생각이 있어 부쳐서 보여준 작품에 받들어 화답하다(西池賞蓮, 奉和丁海左有懷寄示之作)」


이가환은 서지에 대하여 3편의 시를 남겼다. 서지에서 여름에는 나무들이 보기 좋았고 가을에는 연꽃들이 아름다웠다. 옷깃을 풀고서 베개에 누워 있으니 바람은 솔솔 들어오고 해는 더디 흘러간다. 연못의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오자, 지난해 사람들과 노닐었던 기억에 마음이 아팠다. 지난해 한 때를 함께 보냈던 사람이나 이가환 본인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마냥 아름다울 수 없는 건 덧없는 인생을 깨닫게 된 탓이었다.


천연정(天然亭) 서지(西池) Seoul, Korea, 1897.jpg 천연정(天然亭) 서지(西池) Seoul, Korea, 1897


연밥 익어가자 연꽃은 시들었지만

연잎은 연못 가득 여전히 푸르더니

하룻밤 가을바람 서리를 재촉한 뒤

잎 지고 향기 다해 부평만 남았다네.

蓮花成子已凋零 蓮葉滿池猶自靑

秋風一夜催霜後 藕敗香殘只有萍

윤기,「천연정에서 연을 감상하며. 꽃은 이미 졌다(天然亭賞蓮 時花已盡)」


유본예의 『한경지략』에는 “천연정은 돈의문 밖 서지 가에 있다. 이 정자는 본래 이해중(李海重)의 서재였다. 지금은 경기감영 중영(中營)의 관청 건물이 되었다. 서지의 연꽃이 제일 무성할 때 도성 사람들이 여름철에 연꽃 보러 올 때 이 정자에 많이 온다.”라 나온다. 사람들은 여름철 연꽃이 한창일 때 이곳을 찾아왔다. 위의 시는 윤기가 66세 때에 쓴 것이다. 가을에 천연정에 찾아오자 이미 연꽃은 다 시들었고 연잎만 푸르렀다. 가을의 천연정은 노경(老境)만큼이나 쓸쓸했다.

서지와 천연정은 연꽃으로 유명했다. 사람들은 한여름 더위에 연꽃을 감상하며 더위를 달래곤 했다. 이윤영이나 정약용 같은 유명한 인사들도 여기에서 시회(詩會)를 열고 동료들과 함께 시를 지었다. 철이 지난 서지(西池)는 제철에 아름다웠던 풍경만큼의 낙폭으로 쓸쓸했다. 거기서 자신들의 찬란한 전성기와 다가올 노년을 떠올렸다.



천연정(天然亭) 서지(西池) Seoul, Korea, 1880.jpg 천연정(天然亭) 서지(西池) Seoul, Korea, 1880, photographer Unident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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