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26

수성동(水聲洞), 우중(雨中)에 물소리 계곡을 흔들다

by 박동욱

수성동(水聲洞), 우중(雨中)에 물소리 계곡을 흔들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 “수성동은 인왕산 자락에 있다. 계곡이 깊고 그윽하며 자연경관이 빼어나 여름철에 노닐며 구경하기에 가장 좋다. 어떤 이는 ‘수성동이 비해당(匪懈堂)의 옛 집터이다’라고 한다. 기린교(麒麟橋)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다.”라 나온다. 비해당이란 당호는 세종이 하사한 것으로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의 집이었다. 기린교는 지금도 남아 있다.

수성동은 지금은 철거된 옥인시범아파트 일대이다.『동국여지비고』에도 ‘명승지’로 소개되었고, 겸재 정선의『장동팔경첩』(간송미술관 소장)에도 수록되어 있다. 비 내리는 여름에 가장 가볼 만하다. 산을 찢을 듯한 물소리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수성동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 중 수성동. 간송미술관.jpg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 중 수성동. 간송미술관


걷고 걸어 물줄기 올라가보니

물길 다한 곳에 봉우리 솟아 있었네.

지는 해는 남은 힘 있지 않았고

뜬구름 제 스스로 모습 바꾸네.

샘물 붉어 둘러보니 마을 절반 살구꽃이요

바위 푸르러 바라보니 동네 모두 소나무로다.

아득히 보니 동쪽으로 한양성 멀찍한데,

봄빛이 구중궁궐 감싸고 있네.

行行流水上 水盡有高峰

落日無餘力 浮雲自幻容

泉紅村半杏 石翠洞皆松

極目東城遠 春光護九重

이단전(李亶佃),「수성동(水聲洞)」


이 시는 제목 뒤에 ‘절필(絶筆)’이라고 부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생애 마지막에 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저물 무렵 수성동에서 물길을 거슬러 인왕산 중턱까지 올라가 동쪽으로 한양을 바라본 정경을 공간의 이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이제 지는 해처럼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살았던 인생은 뜬구름처럼 방랑과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았다. 수성동에는 살구나무와 소나무가 지천에 깔려 있었다. 마지막 구에서는 왕조가 오래도록 창성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것으로 끝냈다. 이 시는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채워져 있다. 왜 하필이면 생애 마지막에 수성동을 대상으로 시를 썼을까? 수성동은 이단전이 운명처럼 사랑했던 장소이자 풍광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절필이란 것을 감안해 보면 수성동을 묘사한 것이 마치 저승의 풍경처럼 환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수성동 한양도성도에 표기된 수성동과 기린교. 삼성리움미술관.jpg [한양도성도]에 표기된 수성동과 기린교. 삼성리움미술관


골짝을 들어서자 몇 걸음 안가

발밑에서 우렛소리 많이 들리네.

촉촉한 숲 몸뚱이 감싼 듯하니

낮에 가도 밤인가 의심이 되네.

깨끗한 이끼는 자리로 적당하였고,

둥그런 솔은 기와 덮은 것에 견줄 만하네.

예전에는 낙숫물 소리 들리었는데,

이제 와선 대아 소리 듣는 것 같네.

산 속이 이때 마침 엄숙해지니

새들도 지저귀는 소리가 없네.

원컨대 이 소리를 가지고 가서

저 속되고 무례한 무리들 고치고 싶네.

저녁 구름 갑자기 먹 뿌린 듯하니,

그대더러 시의 뜻을 그리란 거네.

入谷不數武 吼雷殷屐下

濕翠似裹身 晝行復疑夜

淨苔當舖席 圓松敵覆瓦

簷溜昔啁啾 如今聽大雅

山心正肅然 鳥雀無喧者

願將此聲歸 砭彼俗而野

夕雲忽潑墨 敎君詩意寫

김정희(金正喜),「수성동에서 빗속에 폭포를 구경하다. 심설의 운자에 차운하다[水聲洞雨中觀瀑 次沁雪韻]」


이 시는 비 내리는 수성동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골짜기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은 물소리가 들리어 온다. 빗물에 푹 젖은 숲은 마치 대낮에도 밤중처럼 어둡기만 하다. 이끼는 방석이, 소나무는 기왓장이 되어 주었다. 비가 오기 전 폭포수는 그저 낙숫물 소리와 같았지만 비가 내릴 때 폭포수는 대아(大雅)의 소리 같았다. 대아(大雅)는『시경』의 편명이기도 하고 도덕이 높고 큰 재주를 갖춘 인물을 이르기도 하다. 여기서는 대단히 큰 소리를 의미한다. 산 속에 있는 새들도 이 압도적인 소리에 놀랐는지 지저귀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이 소리를 가지고서 저 소인배들의 정신을 바짝 들게 하고 싶다고 했다. 추사는 비 내리는 폭포의 장관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


수성동 서울 육백년에 수록된 기린교.jpg 기린교, 서울 육백년 수록 사진


인왕산 위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인왕산 아래에는 물이 콸콸 흐른다네.

오직 이 물이 있는 곳 바로 내 고향이라

머뭇대며 차마 가지 못하였다네.

내가 풍경과 함께 서로 상관하지 않고 나서

노래 부르고 돌아보면서 일어나니

하늘은 갑작스레 맑게 개었고

해는 벌써 서산에 걸리어있네.

西山之上雨床床兮 西山之下水湯湯兮

惟此水是吾鄕兮 徜徉不忍去

物與我而俱相忘兮 歌闋相顧而起

天忽開霽 西日已在山

박윤묵(朴允默),「수성동에 노닐고서(遊水聲洞記)」에 나오는 시.


박윤묵은 수성동에 대해 여러 편의 시와 글을 남긴 바 있다. 인왕산에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모두 수성동에 집결을 한다.「수성동에 노닐고서(遊水聲洞記)」에서는 그 물소리를 기가 막히게 묘사하고 있다. 위의 시는 이 글의 말미에 나온다. 비가 쏟아져 내리면 계곡에 물은 삽시간에 불어난다. 이 광경을 놓치기라도 할까봐 친구들과 빗속에 수성동을 찾았다. 이 물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자신의 고향이라고까지 하면서 해질녘까지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가 수정동의 풍경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만하다.

수성동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공간이다. 서울은 이렇게 이름만 남아 있고 사라진 곳이 너무나 많다. 다행히 수성동은 지금도 찾을 수 있고, 거기에 기린교도 아직 남아 있다. 비 내리는 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정선의 그림과 비교해 보고, 엄청난 물소리를 느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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