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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Feb 06. 2023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4. 이제현, 「소하(蕭何)」


4. 소하의 실수     

秦家圖籍漢山河   진나라 서책들로 한나라 보존한 공이 

功比曹參百倍加   조참에 비한다면 백 배가 더 낫다네.

白首年來還見縶   흰 머리 늘그막엔 하옥이 되었으니  

只應羞殺召平瓜   다만 응당 소평과에겐 부끄러운 일이었네. 

이제현, 「소하(蕭何)」     


[평설]

소하가 함양 땅에 이르자 맨 먼저 진나라의 승상부과 어사부의 율령과 도서 따위를 챙겼다. 이 일로써 한고조가 천하를 다스리게 될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한고조는 나중에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차지한 후 논공행상을 할 때 소하를 일등공신으로 삼았다. 주위에서는 조참이 전장(戰場)에서 70군데나 상처를 입었고 성과 땅을 공략한 공이 가장 많으니 일등공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조참은 이등공신이 되었다. 소하가 후방에서 수행했던 백업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한고조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에 소하가 상림원(上林苑) 안에 있는 빈 땅을 백성들이 개간하도록 하고자 한고조에게 요청했다가 한고조의 노여움을 사서 하옥되었다가 며칠 뒤에 사면된 일이 있었다. 진(秦)의 유민인 소평(召平)은 장안성(長安城) 동편에 오이[瓜]를 심어서 소평과라 불리었다. 소하(蕭何)가 승상(丞相)이 되어 5천 호(戶)의 봉작(封爵)을 받자 소평이 소하에게 “임금에게 의심을 받기가 쉬우니 봉작을 사양하고 받지 말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다가 화를 입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 시에서는 1,2구에서 소하의 공을 칭송하고 3,4구에서 소하의 처세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백성들을 위한 정책일지라도 군주에게 의심을 받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현의 군신관(君臣觀)을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끝으로 재미난 사실을 하나 소개한다. 상국인 소하가 죽기 전에 ‘혜제’에게 다음번 한나라 재상으로 조참을 천거하였으니, 소하가 조참을 크게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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