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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Feb 15. 2023

삼국(三國)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4

김창협,「관왕묘에서 자익의 시에 차운하다[關王廟 次子益韻]」

4. 예사롭지 않은 관왕묘

廟貌森帷戶(묘모삼유호)   사당의 휘장 문은 엄숙도 한데                   

窺臨颯有風(규임삽유풍)   다가서서 엿보니 바람이 부네.                   

丹靑神鬼接(단청신귀접)   초상화에 귀신이 서려 있는데                    

涕淚古今同(체루고금동)   보는 이의 눈물은 고금이 같네.                  

北地羞銜璧(북지수함벽)   유심(劉諶)은 항복을 부끄러워했고  

南陽效鞠躬(남양효국궁)   제갈량(諸葛亮)은 나랏일에 몸을 바쳤네.       

忠貞恨一槩(충정한일개)   충성이며 절개가 모두 같으니                   

合此並幽宮(합차병유궁)   두 분도 사당에 함께 모셔야 하리.  

김창협(金昌協), 「관왕묘(關王廟)에서 자익의 시에 차운하다[關王廟 次子益韻]」     


[평설]

관왕묘에 들어서면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곤 했다. 초상화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보는 사람마다 관우의 충정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북지왕 유심과 제갈량 두 사람을 꼽았다. 북지왕 유심은 촉한의 유선(劉禪)이 등애에게 항복하려 하자 배수진을 치고 사직을 위해 힘써 싸우다가 함께 죽어야 한다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유선이 받아들이지 않자, 유심은 소열황제(昭烈皇帝) 유비(劉備)의 사당에 곡하고서 먼저 처자를 죽인 뒤에 자살하였다. 또 제갈량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는 “몸을 굽히고 수고로움을 다하여[鞠躬盡瘁]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시의 말미에서는 유심이나 제갈량도 나라를 위한 충정에 있어서는 관우보다 못할 것이 없으니 사당에다 함께 모셔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양징(楊澄)이란 사람이 이 시를 보고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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