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흠, 「홍문 잔치 노래[鴻門謠]」
15. 사람을 잘못 본 범증
玉斗白如雪(옥두백여설) 옥두는 눈과 같이 희기만 하고
龍劍光如水(용검광여수) 보검은 물처럼 빛이 나누나.
范增爾何人(범증이하인) 범증 그대 어떤 사람이던가
隆準眞天子(융준진천자) 우뚝 솟은 코가 진짜 천자감인데.
신흠, 「홍문 잔치 노래[鴻門謠]」
[평설]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다투다 홍문(鴻門)에서 만났다. 항우의 참모 범증(范增)은 유방을 죽여버리라고 여러 번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범증은 재차 항장(項莊)에게 칼춤을 추다 유방을 찔러 죽이게 했으나 항백(項伯)이 방해하여 실패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한(漢)나라 장수인 번쾌(樊噲)가 들어가 소란을 떠는 사이에 유방은 도망쳤다. 유방은 탈출에 성공한 뒤 장량(張良)을 시켜 항우에게는 백벽(白璧) 한 쌍, 범증에게는 옥두(玉斗) 한 쌍을 보냈다. 범증은 유방을 놓친 것을 알고 화가 나서 옥두를 칼로 쳐 부셔 버렸다. 증공(曾鞏)의 「우미인초(虞美人草)」에 “鴻門玉斗粉如雪”이란 구절과 매우 유사하다.
융준은 코가 크다는 말로 용안(龍顔)과 함께 제왕을 가리키는 말인데, 『사기』「고조본기(高祖本紀)」에 “고조의 위인을 보면 코가 크고 용의 얼굴이었다.[高祖爲人 隆準而龍顔]”라는 말이 나온다. 범증은 항우를 섬겨 홍문연에서 유방을 죽이도록 수차례 권했으나 항우가 그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 시는 범증이 유방과 항우 둘 중에 누가 진짜 천자감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는 힐난이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