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욱 Apr 21. 2024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33

박세당,「항우(項羽)」

33. 부차에게 부끄러울 항우

聽譛終疏骨鯁臣(청참종소골경신)   참소 듣고 끝내 강직한 신하 멀리했으니 

吳亡楚敗悔應均(오망초패회응균)   오(吳)와 초(楚)의 패망함이 후회 응당 같으리라.  

君王但對虞姬泣(군왕단대우희읍)   군왕이 우희 보고 눈물만 흘렸으니 

還愧甬東幎冒人(환괴용동멱모인)   용동에서 멱모한 이에게 되려 부끄러우리. 

박세당,「항우(項羽)」     


[평설]

강직한 신하의 직언을 멀리하는 것은 망국(亡國)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오자서(伍子胥)는 부차(夫差)에게 정사를 돌보라고 간했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 뒤에 부차는 오자서가 죽자, 그의 시신을 가죽 부대에 싸서 강에 버리게 했다. 항우는 진평의 이간계에 걸려 범증을 내쳤다. 범증은 고향으로 돌아가다 등창이 나서 죽었다. 오자서와 범증의 간언을 잘 들었다면 오나라와 초나라는 그렇게 쉽사리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자, 항우는 우희를 마주 보며 눈물만 흘렸다. 그렇지만 항우가 죽기 전에 범증에 대한 자신의 처사를 후회했다는 기록은 없다. 반면 부차는 어땠을까? 월나라가 오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부차(夫差)에게 사신을 보내 용동(甬東)으로 불렀다. 부차는 고소대(姑蘇臺)에 올라가 “나는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라 하고 멱모(幎冒)를 쓰고 죽었다고 한다. 멱모는 죽은 자의 얼굴을 덮는 검은 천이다. 이때는 이미 오자서가 죽은 지 10여 년이 지나 시점이었다. 항우는 정확히 왜 자신이 망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오직 하늘을 탓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것이 그가 불세출의 재주를 갖고서도 유방에게 패한 가장 큰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3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