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홍(李惟弘),「우희초(虞姬草)」
67. 원혼은 우미인초가 되었다
漢軍何事楚歌多 한군은 어인 일로 초가(楚歌) 많이 불렀나.
泣別虞姬奈若何 우희와 울며 이별하니 널 어쩌란 말인가.
唯有寃魂爲綠草 오직 원혼이 있어 푸른 풀 되어
至今相對太眞花 지금껏 양귀비꽃 상대하누나.
이유홍(李惟弘),「우희초(虞姬草)」
[평설]
1, 2구는「해하가(垓下歌)」의 내용을 옮겨왔다. 사방에서는 초나라 노래가 들리고 사랑하는 여인과는 헤어져야 한다.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이기에 이 절망은 더 비극적이다.
우희는 결국 자결했다. 뒤에 우희의 무덤 위에 풀꽃이 돋아나자 사람들은 우미인초(虞美人草)라 불렀다. 우미인초를 두고 지은 시 중에서는 송(宋)나라 증공(曾鞏)의「우미인초」가 가장 유명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우미인초』라는 책을 쓰고, 미조구치 겐지는 ‘우미인초’(1935)라는 영화를 찍기도 한다.
우미인초는 개양귀비라고도 불린다. 양귀비와는 달리 아편을 만들 수 없다. 양귀비는 당 현종의 후궁이었다. 그래서 양귀비꽃은 당 현종의 양귀비처럼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인은 우희의 원혼이 우미인초가 되어서 양귀비꽃을 상대할 만큼 아름답게 피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