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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365일, 한시 365수 (26)

26. 낮잠에서 깨어[睡起]」, 서거정(徐居正, 1420∼1488)

by 박동욱

26. 낮잠에서 깨어[睡起]」, 서거정(徐居正, 1420∼1488)

簾影深深轉 발그림자 방 깊숙이 드리워가고

荷香續續來 연꽃 향기가 솔솔 풍겨 오누나

夢回孤枕上 홀로 자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桐葉雨聲催 오동잎에 후드득 빗소리 나네.


[평설]

이 시는 여름날 낮잠을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발그림자는 그새 방 안 깊이 옮겨져 있고, 연꽃은 어데서 피어 있는지 향기가 풍겨 나온다. 잠자는 연꽃이라는 이름의 수련(睡蓮)은 낮에는 피었다가 밤엔 물속으로 오므라든다. 아직도 잠이 다 안 깼는데 빗줄기가 오동잎을 때려대니 그 소리가 요란하다. 잠에서 깨어나면서 의식이 하나씩 돌아온다. 시각(視覺)에서 시작해서 후각(嗅覺)으로 옮겨갔다가 청각(聽覺)으로 마무리했다. 낮잠에서 깨어나면서 살아 있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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