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119)

119. 뒷사람들 나를 알겠는가[無題], 작자 미상

by 박동욱

119. 뒷사람들 나를 알겠는가[無題], 작자 미상

시상이 떠올라 종이창에다 쓰니

종이가 찢어지면 시도 사라지리

시 좋으면 사람들 전할 것이고,

시가 나쁘면 침을 뱉을 것이네.

시 전하면 찢어진들 상심이 될까

침 뱉으면 찢어져도 좋을 것이네.

시 다 쓰면 말 타고 떠날 것이니

뒷사람들 뉘라서 나를 알리오.

得詩題紙窓 紙破詩亦破

詩好人應傳 詩惡人應唾

人傳破何傷 人唾破亦可

題罷騎馬去 後人誰知我


[평설]

이 시는 윤기(尹愭)의 「협리한화(峽裏閒話)」에 실려 있다. 무명씨가 종이창에 시를 남겼는데, 시가 좋아서 당시 사람들에게 구전(口傳)되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렇지만 다른 기록에서 이 시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윤기의 정서가 깊이 투사된 시로 읽어도 무방해 보인다.

종이창이란 곳은 여러모로 시를 남기기에는 적절치 않다. 이런 곳에 시를 남기는 것은 애초부터 남들에게 기억될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를 테니 내 시가 어떠하든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가치와 존재 의의를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 남들은 결코 나를 알아줄 수 없다는 깊은 고독과 절망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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