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120)

120. 벌레가 나냐 기와가 나냐[蟲也瓦也吾], 이덕무(李德懋)

by 박동욱


120. 벌레가 나냐 기와가 나냐[蟲也瓦也吾], 이덕무(李德懋)

벌레인가 기와인가 나란 사람은

기술이나 재주나 싹 다 없었네.

뱃속에는 불같은 기운만 있어

그것 하나 남들과 크게 달랐네.

사람들 백이더러 탐한다 하면

내가 성을 내어서 이를 갈았고,

사람들 굴원더러 간사타 하면

내가 성을 내어서 눈 부릅떴네.

내게 입이 백 개나 있다고 한들

들어줄 이 없으니 어찌하겠나.

하늘에게 말해봐도 눈을 감았고

땅에다 굽어봐도 못 본 체하네.

산에 오르려 하니 산도 어리석고

물에 가려 하니 물도 어리석네

혼자서 혀를 차고 한탄을 하고

혼자서 탄식하며 한숨 쉬었네.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거렸고

뱃속은 모조리 다 타들어 가네.

伯夷가 탐했고 굴원이 간사타한들

내가 상관할 바가 무엇 있으리.

술이나 마셔서는 진창 취하고

글이나 보다가는 잠들 뿐이네.

아! 잠이 들어 깨지 않고서

저 벌레나 기와로 돌아가련다

蟲也瓦也吾 苦無才與技

腹有氣烘烘 大與人殊異

人謂伯夷貪 吾怒切吾齒

人謂靈均詐 吾嗔裂吾眥

假吾有百喙 奈人無一耳

仰語天天目+宰 俯視地地眵

欲登山山獃 欲臨水水癡

咄嗚呼嗚呼 唉噓唏噓唏

顴頰顙皺皴 肝肺脾熬煎

夷與均貪詐 於汝何干焉

姑飮酒謀醉 因看書引眠

于于而無訛 還他蟲瓦然


[평설]

이 시는 자신에 대한 자조(自嘲)와 자탄(自歎)으로 가득차 있다. 나는 기술이나 재주도 없지만, 기세만은 남다르다. 세상에서는 백이나 굴원같은 인물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백 개의 입[百喙]과 하나의 귀[一耳]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도 구원이 될 수 없으니 산이나 물도 답답하고 어리석을 뿐이다. 자연스레 세상에서의 출구는 찾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음주(飮酒), 독서(讀書), 수면(睡眠)을 들었다. 여기서는 독서도 수면을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으니 결국 음주와 수면만 있는 셈이다. 자신이 세상과 사람들 속으로 나가기보다는 자신을 유폐(幽閉)시켰다. 결국 벌레나 기와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마무리했다. 자신을 하찮은 생물과 무생물과 같이 놓음으로써 자신의 고뇌를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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