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사람의 음식남녀 39

『食色紳言』,[明]龍遵 著

by 박동욱

[39] 『주훈(酒訓)』을 만들어 황제를 기쁘게 한 고윤(高允)


고윤(高允)이 칙명을 받아서 지난 세대에 술이 도덕을 그르친 일을 모아서『주훈(酒訓)』이라고 하니 효문(孝文)이 보고서 기뻐했다.


高允被敕, 論集往世酒之敗德者以爲『酒訓』, 孝文覽而悅之.




[평설]

고윤(高允, 390~488)은 북위(北魏) 발해(渤海) 수현(蓨縣) 사람으로 자는 백공(伯恭)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10살 때는 할아버지까지 잃음으로써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내다가 승려가 되었다. 법명은 법부(法浮)였는데 얼마 뒤 환속했다. 문학을 좋아했고, 경사(經史) 외에 천문과 술수(術數)에도 정통했다.

문성제(文成帝)가 즉위하자 중서령(中書令)에 오르고, 항상 궁중에 들어가 종일 자문에 응했는데, 황제가 그를 영공(令公)이라 부르며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헌문제(獻文帝) 때 풍태후(馮太后)의 인정을 받아 대정(大政)에 참여했다. 율령(律令)을 제정하고 학교를 일으켰으며, 군국(軍國)의 중요한 문서들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효문제(孝文帝)가 즉위하자 함양공(咸陽公)에 올랐다. 태화(太和) 2년(478) 질병으로 사직하고 귀향했는데, 나중에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이 되어 중서감(中書監)을 이끌었다. 예언대로 100세를 눈앞에 둔 98세의 나이로 죽었다. 앞 뒤로 다섯 황제를 섬겼고 50여 년 동안 벼슬하였는데 강직한 신하로 소문이 났다.

성대중은 『청성잡기』에서 “옛말에 ‘마음이 한결같으면 10명의 왕을 섬길 수 있다.’ 하였다. 옛날에 위태로운 조정에서 벼슬하여 의심 많고 포학한 왕을 섬기면서도 화를 면한 자는 이런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급암(汲黯), 제나라의 채흥종(蔡興宗), 위(魏)나라의 고윤(高允), 수나라의 이강(李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라 하였다. 이처럼 고윤은 처세에 남다른 면모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가 술로 인해 나쁜 행실을 저지른 사례들을 모아서『주훈』을 쓰자 황제가 기뻐했다. 이 책이 황제와 신하들 모두에게 술로 인한 폐해를 담은 좋은 교과서가 되었다.


고윤(高允).jpg 고윤(高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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