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269)

269. 방구석과 높은 설산[謹獨], 이진상(李震相)

by 박동욱

269. 방구석과 높은 설산[謹獨], 이진상(李震相)

남 알 땐 쉽다지만 나만 알 땐 어려우니

생각 한번 하는 동안 온갖 일 떠오른다.

방구석 있을 때도 부끄러움 없다면

설산 가서 고행할 일 구태여 뭐 있겠나?

人知猶易獨知難 雷雨雲星一念間

如令屋漏常無愧 苦行何須入雪山


[평설]

이진상은 1874년(당시 57세) 겨울에 제자들과 함께 가야산 아래 있는 만귀정(晩歸亭)으로 들어갔다. 이 시는 그때 쓴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고 있을 때는 나쁜 짓이나 부끄러운 일을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이 보고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번 생각할 때마다 온갖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그것을 항상 제어하기도 힘들다. 아무도 없는 방구석에 부끄러울 짓을 하지 않는다면 이미 수행이 어지간한 수준에 오른 셈이다. 그러니 무엇 하러 높은 산에 올라 고행을 사서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어디서 수행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가짐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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