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274)

274. 어떤 절교[諷寄鄭仁弘], 김우옹

by 박동욱

274. 어떤 절교[諷寄鄭仁弘], 김우옹

산에 사는 날 찾을 것 없으니

나를 찾아오는 길 칠흑과 같네.

무엇을 그대에게 드리겠는가

바위 위에 떠 있는 조각 달 뿐이네.

山人不可見 山路黑如漆

何以贈夫君 巖頭一片月


[평설]

이 시는 1600년(당시 나이 61세)에 정인홍과 절교를 선언하며 써준 것이다. 김우옹은 남명의 문하에서도 공부했다가 후에 퇴계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다. 김우옹과 정인홍은 남명 문하에 함께 있었는데 남명은 김우옹에게는 성성자를, 정인홍에게는 경의검을 각각 주었다. 이렇게 가까운 사이는 1589년 기축옥사 이후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김우옹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길에 오르면서, 정인홍이 서인과 결탁하여 자신을 탄핵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김우옹이 정인홍에게 절교를 선언하게 된 배경이다.

예전에는 상대와 절교(絶交)를 선언할 때 편지나 시를 이용했다. 김우옹은 상대에게 시를 써주었다. 이제부터 자신을 찾아올 것 없으니 칠흑처럼 어두운 길만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대와 자신의 관계가 끝났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헤어지는 마당에도 바위 위에 떠 있는 조각달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 조각달은 자신을 다시 찾아올 때 길을 환히 밝혀줄 용도였을까? 상대의 잘못된 판단을 다시 한번 환히 되짚어 줄 용도였을까? 예전에는 이처럼 절교를 통보함에도 상대를 마지막까지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품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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