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 이가 빠지다[自詠], 권근(權近)
357. 이가 빠지다[自詠], 권근(權近)
귀도 먹고 눈까지 침침한데다
이 빠지고 혀만이 남아 있구나.
물건 봐도 분간키 쉽지 않았고
딱딱한 건 뱉어야지 어이 삼키랴.
말을 들어도 도통 들리지 않고
수시로 멍청하게 졸기만 하네.
신세를 잊고 산 지 오래됐으니
시끄러움 피해 숨어 삶 즐기리라.
耳聾眼復暗 齒落舌空存
視物已難辨 吐剛焉得呑
聽言常聵聵 瞌睡只昏昏
身世曾忘久 深居樂避喧
[평설]
귀와 눈, 이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 몹시도 불편하지만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귀가 안 들리니 시비를 남들과 따지지 않고 내 안에 침잠할 수 있어 기쁘다. 이 시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가 빠지고 눈이 침침한 일에도 좋은 점을 찾을 수 있다. 이가 빠지면 먹는 것이 불편하니 과식하지 않아 살도 찌지 않는다. 또 눈이 침침해지면 안 볼 꼴을 보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노화는 상실감만을 가져다주기보다, 예기치 않게 다른 것들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