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성, 「雍齒墓」
79. 부끄러운 옹치
雍齒何如者 옹치는 어떤 인물이기에
無功以怨侯 공도 없이 제후만 탐하였던가.
本非高祖意 본래 고조의 뜻이 아니었으니
蓋出子房謀 아마도 장자방의 계책이었으리
縱弭沙中謗 비록 백사장의 비방 잠재웠지만
其如天下尤 천하의 비난들을 어찌 막으리
孤墳隱蔓草 외딴 무덤 덩굴에 묻혀 있어도
千載亦包羞 천년토록 부끄러움 남아 있겠네.
이민성, 「雍齒墓」
[평설]
이 시는 옹치가 특별한 공적 없이 높은 지위만 바랬던 일을 힐난하고 있다. 옹치는 공적도 없으면서 제후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사실 옹치만 제후의 지위를 얻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제후에 봉함을 받지 못해 불만이 일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장량의 건의에 따라 옹치를 십방후(什方侯)에 봉했다.
5∼6구에서 백사장은 여러 사람이 모여 불평하던 장소다. 유방이 공로를 조사하여 상을 주었으나, 관직을 받지 못한 다른 장수들이 모래 위에 무리 지어 앉아서 반역을 꾀하고 의논하였다. 그래서 장량은 옹치를 제후로 봉해서 사중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장량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공적과 지위 사이의 정당한 관계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공정하지 못한 책봉은 천하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7~8구는 옹치가 공적 없이 제후가 된 것이 개인의 불명예를 넘어서,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권력이 역사 앞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어떤 자리에 어울리는 실력과 공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영전하거나 승진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부적절한 인사는 그 대상이 되는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선량한 구성원들 모두에게 무력감을 주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