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金地粹),「소열의 사당을 지나다[過昭烈廟]」
36. 폐허가 된 유비의 사당
此廟何年廢(차묘하년폐) 이 사당 어느 해에 버려졌던가.
行人是日過(행인시일과) 행인이 이날에도 지나고 있네.
空庭香火絶(공정향화절) 빈 뜰에는 향불이 사라져있고
喬木夕陽多(교목석양다) 해 질 녘 키 큰 나무 많이 서 있네.
取益機非失(취익기비실) 익주 취할 때 기미 안 놓쳤지만
爭荊計却差(쟁형계각차) 형주 다툴 때 계책 어긋났었네.
惟餘結義處(유여결의처) 오직 결의한 곳이 남아 있으니
千古指陂陁(천고지피타) 오랜 세월 저 비탈 가리키리라.
김지수(金地粹),「소열의 사당을 지나다[過昭烈廟]」
[평설]
이 시는 김지수가 1626년(당시 42세)에 서장관으로 사행을 가던 중에 유비의 사당을 방문하고 나서 감회를 적은 것이다. 1~4구는 버려진 사당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황폐한 사당은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채 그대로였다. 큰 나무만이 여러 그루가 있고, 사당 뜰에는 향불조차 끊겼다. 5~6구는 유비의 정치적 성공과 실패를 대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비는 유장의 익주 땅을 점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형주 땅을 두고 오나라와 다투다 끝내 관우를 잃었다. 이처럼 유비는 미완의 꿈을 남기고 사라졌다. 7~8구는 유비의 의리와 정신적 가치를 강조한다. 지금 비록 사당이 폐허가 되었지만, 유비가 남긴 정신은 오래도록 후세에 전하게 될 것이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쇠락과 무상함을 드러내면서도 정신적 가치의 영속성을 강조하며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