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잔혹하기 짝이 없었던 여후
86. 잔혹하기 짝이 없었던 여후
芒山雲氣未曾收(망산운기미증수) 망산의 구름 기운 아직도 걷히지 않아
一婦終難呂易劉(일부종난려역류) 한 여인이 끝내 여씨로 유씨 바꾸기 어려웠네
人彘酷刑何太甚(인체혹형하태심) 인체의 혹독한 형벌 어찌 그리 심했던가
乃公猶貸辟陽侯(내공유대벽양후) 한고조는 오히려 벽양후를 용서했었는데
남용익, 「詠史」, 呂后
[평설]
1구는 한고조 유방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어 여후가 유씨를 몰아내기 힘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여후(呂后)가 죽은 뒤 여산(呂産)과 여녹(呂祿) 등이 난을 일으키려 하자, 진평과 주발이 이들을 주멸(誅滅)하고 문제(文帝)를 세웠다. 여후는 잔혹하기 짝이 없었던 인물이다. 척희(戚姬)의 손과 발을 자른 다음, 눈과 귀를 보고 들을 수 없게 만들어 돼지우리에 넣어서 ‘인체(人彘)’라고 하였다.
벽양후(辟陽侯)는 심이기(審食其)의 봉호이다. 한고조(漢高祖)의 총애를 받았고, 여후(呂后)의 정부(情夫)로 궁중에서 늘 거처하였다. 한고조는 심이기가 자기 아내와 사통한다는 사실을 짐작했겠지만, 모른 척 눈 감아 주다 죽었다. 이렇게 한고조와 여후의 일화를 대비시켜 여후의 잔혹성을 부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