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89

남용익(南龍翼),「詠史」, ‘黥布’

by 박동욱

89. 배신의 극치

掘嬴沈芉項仍仇(굴영침간항잉구) 파묻고 죽였으나 항우와 원수 되고

反復歸來又叛劉(반복귀래우반류) 반복해 귀순했지만 또 유방 배반했네.

自古貫盈無爾匹(자고관영무이필) 예로부터 큰 죄악이 짝할 이 없었으니

同爲逆鬼信應羞(동위역귀신응수) 반역 귀신 함께 됐던 한신도 부끄러워 하리.

남용익(南龍翼),「詠史」, ‘黥布’


[평설]

이 시는 경포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굴영침간(掘嬴沈芉)은 경포가 저지른 두 가지 사건을 가리킨다. 굴영(掘嬴)은 경포가 저지른 신안(新安)대학살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에서 경포는 진나라 군인 20만 명을 생매장시켰다. 침간(沈芉)은 경포가 의제(義帝)를 강 속에서 격살(擊殺)한 사건을 말한다. 경포는 항우의 최측근으로 이러한 사건을 직접 벌였지만 끝내 항우를 배신하고 한고조 쪽으로 몸을 옮겼다.

경포의 배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나라가 세워진 뒤 한신(韓信)과 팽월(彭越) 등 개국 공신들이 하나하나 피살되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주살(誅殺) 당하였다. 이로써 경포는 항우와 유방을 모두 배신한 셈이다.

작가는 경포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준엄하게 비판한다. 오죽하면 반역의 귀신[逆鬼]으로 한신을 꼽으면서 한신도 경포와 같은 반열로 취급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겠다고 말했다. 경포는 오직 이익에 따라 몸을 움직였고, 이익이 사라지면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매거진의 이전글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