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90

김광익(金光翼),「咏史」

by 박동욱

90. 장량의 두 얼굴

從容擎履處(종용경리처) 조용히 신발 들고 있던 그곳은

慘憺月中橋(참담월중교) 구슬픈 달빛 아래 다리였다네.

始造椎秦鐵(시조추진철) 처음엔 진을 치는 철퇴 만들었다가

終成散楚簫(종성산초소) 마침내 초를 해산시킨 피리 되었네.

김광익(金光翼),「咏史」


[평설]

이 시는 장량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장량(張良)은 하비(下邳)의 다리 위에서 황석공(黃石公)이라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의 신발을 다리 밑에서 주워 공손히 무릎 꿇고 신겨 드렸다. 그 뒤 황석공으로부터『태공병법(太公兵法)』을 받고 익히게 된다. 3구는 장량이 창해역사(滄海力士)를 고용하여 120근 철퇴로 진시황을 시해하려 했으나 실패한 사실을 말한다. 4구는 항우를 사면초가에 빠트린 사실을 말한다. 이 두 구절은 장량의 변모 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철(鐵)과 소(簫)를 대비하여 장량이 강인함과 유연함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나라 치는 철퇴’는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과격한 모습을, ‘초나라 해산시킨 피리’는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물리친 전략가의 모습을 각각 상징한다. 시인은 복수심에 불타던 청년에서 지혜로운 전략가로 변모한 장량의 일대기를 네 구에 담아냈다. 특히 '철퇴'에서 '피리'로의 변화는 무력에서 지략으로, 강경함에서 유연함으로 변모한 장량의 정신적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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