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익(南龍翼), 「詠史」, ‘徐庶’
42. 효도와 충성
方寸亂時雖赴母(방촌란시수부모) 마음이 흔들릴 때 어머니께 달려갔지만
衰麻除後詎忘君(쇠마제후거망군) 상복을 벗은 뒤엔 어찌 임금 잊으리오
中興大業輸龍鳳(중흥대업수룡봉) 중흥의 큰 업적은 제갈량과 방통에게 돌아갔지만,
應笑王陵強策勳(응소왕릉강책훈) 왕릉이 억지로 공 다투던 일 비웃으리
남용익(南龍翼), 「詠史」, ‘徐庶’
[평설]
이 시는 서서가 효와 충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결국 어머니를 선택한 일을 다루고 있다. 조조는 서서가 유비의 참모가 되니 더욱 걱정스러웠다. 이를 본 조조의 참모 정욱이 서서의 어머니 필적을 조작해 서서를 불러들인다. 서서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하며 조조를 위해서는 계책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 뒤 서서는 유비를 떠나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러자 어머니는 서서를 꾸짖고 목을 매 죽었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연의』에만 나온다.
1, 2구는 서서가 유비를 떠나 어머니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으나, 어머니상을 마친 뒤에도 유비에 대한 충심을 잊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3구는 서서가 이루지 못한 중흥의 큰 업적이 결국 제갈량과 방통에게 돌아갔음을 드러낸다.
4구에서는 왕릉의 고사를 들어 비교하고 있다. 진(秦) 말기에 왕릉(王陵)이 같은 고향 출신인 한왕(漢王) 유방(劉邦)을 따라 항우(項羽)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항우가 왕릉의 어머니를 인질로 잡고 그를 유인해 부르려고 하자 왕릉의 어머니가 몰래 사자를 보내면서 “한왕은 위대한 분이니 두 마음 갖지 말고 섬기라 하더라고 전하라.” 하고 칼로 자결하였다. 분노한 항우가 왕릉의 어머니를 삶으니 왕릉은 항우에게 가지 않고 유방에게 귀의한다.
서서와 왕릉의 이야기는 대단히 흡사한 부분이 많다. 서서는 어머니를 죽게 한 조조 진영에 남아 있었지만, 조조를 위해 일하지 않고 유비를 그리워했다. 반면 왕릉은 어머니를 죽게 한 항우를 버리고 유방에게 귀의했다. 이는 단순한 선택의 차이가 아니다. 서서는 새로운 주군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서도 본심을 지켰고, 왕릉은 상황에 따라 주군을 선택했다. 이러한 차이가 두 사람의 진정한 충의(忠義)를 가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