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 「論諸葛出處」
45. 제갈량의 출처를 논하다
[1]
武侯出處正(무후출처정) 제갈량은 출처가 바르긴 해도
本領猶未精(본령유미정) 근본은 여전히 미숙하였네.
初心期管樂(초심기관악) 처음엔 관중, 악의 기약했지만
末政近刑名(말정근형명) 말년 정사 형명(刑名)에 가까웠다네.
[2]
武侯禀氣弱(무후품기약) 제갈량은 타고난 기운 약했고,
陽運値其否(양운치기부) 운세는 액운을 만나게 됐네.
武侯學未精(무후학미정) 제갈량의 학문이 미숙한데다,
聖遠無敎致(성원무교치) 성인 시대와 멀어 가르침 못 이르렀네.
[3]
武侯初年事(무후초년사) 제갈량 초년의 일은
全爲管樂爲(전위관악위) 모두다 관중과 악의 위해 한 것이었으나,
武侯末年事(무후말년사) 제갈량 말년의 일은
有似王者師(유사왕자사) 왕자의 스승 노릇에 그치었다네.
이서, 「論諸葛出處」
[평설]
이 시는 제갈량의 정치적 행적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1]에서는 제갈량의 정치적 변모를 지적했다. 처음에는 관중과 악의와 같은 명재상을 꿈꾸었으나, 말년에는 형명을 앞세운 강력한 정치로 기울었다.
[2]에서는 제갈량의 개인적 한계를 지적한다. 타고난 기질이 약하고 운수가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학문적 깊이도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성인의 시대와 멀어 올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근본적인 한계로 보았는데, 이는 제갈량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다.
[3]에서는 제갈량의 정치적 위상 변화를 다루고 있다. 초기에는 관중, 악의를 지향했지만 결국에는 유선의 후견인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 제갈량의 정치적 이상이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좌절된 것을 의미한다.
제갈량을 다룬 대개의 시는 찬양 일색이다. 시인은 제갈량이 출처는 바르게 했으나, 학문의 깊이나 정치적 성과 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제갈량을 맹목적인 추앙이 아닌,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는 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