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익(南龍翼),「詠史」, ‘禰衡’
47. 조조 앞에 선 예형
鄴下曹兒眼底看(업하조아안저간) 업하에서 조조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漁陽撾罷鼓聲殘(어양타파고성잔) 어양곡 치다 멈추니 북소리 잦아졌네.
空成鸚鵡洲邊土(공성앵무주변토) 헛되이 앵무주 가의 흙이 되었으니
明哲終慙管幼安(명철종참관유안) 명철한 이도 끝내 관유안도 부끄러워하리.
남용익(南龍翼),「詠史」, ‘禰衡’
[평설]
이 시는 예형의 비극적 생애를 조명한 작품이다. 예형은 뛰어난 재능과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했으나,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1, 2구는 예형과 조조의 대립을 극적으로 포착한다. 조조가 예형을 불러도 오지 않으니 그를 모욕 주기 위하여 고리(鼓吏)로 삼자, 예형은 여러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속옷만 걸치고 북을 치며 「어양곡(漁陽曲)」을 노래했다. 이는 권력에 대한 예형의 당당한 저항이었다.
3구는 예형의 재능과 비극적 죽음을 암시한다. 후한(後漢) 때 문장이 뛰어났던 예형(禰衡)이 황사(黃射)의 주연에서 즉석에서「앵무부(鸚鵡賦)」를 지어 명문(名文)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그는 황사의 아버지인 황조(黃祖)에게 앵무주(鸚鵡洲)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4구에서는 예형을 관령(管寧)과 대비시킨다. 관령은 은둔하여 3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청빈하게 살았다. 시인은 이러한 관령조차도 예형의 강직한 죽음 앞에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라 말함으로써 예형의 절개를 높이 평가했다.
시인은 예형의 생애를 통해 난세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성찰한다. 예형은 불의한 권력 앞에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던 저항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처세를 모른 채 자신의 재능만을 믿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인물로도 해석된다. 시인은 처세와 절개 사이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예형을 통해 보여 주면서도, 결국 그의 강직한 저항 정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