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 어떤 위로[題外舅西漁權公林亭], 홍한주
배움은 반드시 의심 없는데 이르러야 하나,
세상일은 본디부터 어긋나기 마련이네.
삶과 죽음의 순환은 모두 하늘의 뜻이니
어찌하여 구차히 지는 해를 원망하리.
爲學要須到不疑 元來世事苦參差
死生往復皆天也 何用區區怨落暉
[평설]
이 시는 아들을 잃은 장인 권상신을 위로하는 글이다. 학문의 이치와 현실의 괴리를 통해 인생의 본질적 문제를 성찰한다. 1구는 학문의 궁극적 경지, 즉 이치를 깨달으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해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2구의 '참치(參差)'는 세상일의 부조리를 드러낸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것처럼, 순리와 어긋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3,4구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삶과 죽음은 하늘의 영역이니, 지는 해를 원망하듯 순리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세 단계의 논리로 위로를 전개한다. 학문적 이치와 현실의 간극을 인정하고, 이러한 불일치가 삶의 본질임을 말한 뒤, 마지막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초월하라는 메시지로 나아간다.
이처럼 이 시는 감정에 기댄 어설픈 위로를 하기보다는 철학적 성찰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보듬고 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인간 삶 전체를 아우르는 모순과 부조리의 맥락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고통을 수용하고 초월할 수 있는 더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