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465)

by 박동욱

465. 자유로운 거지[衚衕居室 13], 이언진(李彦瑱)

한 주발 밥으로 배불리 먹고 쉬다가

대로변에 머리 감싸 안고 잠을 자네.

추위에 떠는 거지 승지를 가여워하니

눈 내린 새벽에도 날마다 알현해야 해서네.

一碗飯飽則休 大道傍抱頭眠

寒乞兒憐承旨 雪曉裏每朝天


[평설]

이 시는 “거지가 도승지를 불쌍히 여긴다”라는 속담을 시화(詩化)했다. 극단적인 두 계층의 삶을 대비하여 자유와 구속이라는 역설을 그려냈다.

거지의 삶은 단순하지만 자유롭다. 한 그릇 밥을 먹고 배부르면 쉬고, 길거리에서도 편히 잠들면 그뿐이다. 반면 높은 벼슬인 승지는 새벽부터 궁궐에 나가 상감을 알현해야 하는 구속된 삶을 산다. 거지의 시선을 빌려 신분 질서의 허상을 폭로한다. 거지와 승지 중에 누가 더 자유롭게 누가 더 행복할까? 이러한 물음 속에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 담겨 있다.

이처럼 거지와 승지라는 극단적 신분의 대비를 통해 자유와 구속, 행복과 불행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이는 단순한 풍자를 넘어 조선 후기 신분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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