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色紳言』,[明]龍遵 著
[7] 부처를 배운 범진(范鎭)
황정견(黃庭堅)이 일찍이 범진(范鎭)에게 들러서 하루 종일 마주 했는데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범진이 말하였다.
“나는 20년동안 가슴 속에 일찍이 아무 생각도 일어난 적이 없었고, 최근 1∼2년 동안은 그다지 책을 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손님이 없으면 하루 종일 혼자 앉았다가 한밤중이 되어야 잠이 들었습니다. 비록 아이들이 시끄럽게 불러도 가까이에 있는데도 아무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소동파가 말하였다.
“범진은 평소에 부처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만년에 가서는 청신(清愼)하고 절제하여서 정욕을 품을 대상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니 알고 보면 부처를 배운 작가이다”
黃庭堅嘗過范景仁, 終日相對, 正身端坐. 景仁言: “吾二十年, 胸中未嘗起思慮, 一二年來不甚觀書, 若無賓客, 則終日獨坐. 夜分方睡, 雖兒曹讙呼, 咫尺不聞.” 東坡曰: “范景仁平生不好佛, 晚年清愼減節, 嗜欲物不芥蔕於心, 卻是學佛作家.”
[평설]
범진은 평생 동안 사마광(司馬光)과 의기가 서로 통하였고 소식(蘇軾)과도 교유하였다. 사마광은 “나와 경인(景仁, 범진)은 성(姓)이 같지 않은 형제다”라 하였고, 소식은 그의 묘지명인「范景仁墓誌銘」을 쓰기도 했다. 범진은 20년 동안 잡념이 떠오르지 않았고 책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것을 즐겨하다 밤에는 잠에 빠져 들었다. 삼매에 빠진 듯 아이들이 큰 소리로 불러대도 알아채지 못하였다. 스님이나 다름 없는 삶이었다. 그를 잘 아는 소식은 그를 부처를 배운 작가라 평가했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의 적절한 평가였다.
[어석]
황정견(黃庭堅, 1045∼1105): 송나라 때 시인.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창시자로 생전에는 소식(蘇軾)과 거의 같은 명성을 누렸고, 죽어서는 두보의 계승자로 추앙 받았다. 서가(書家)로서도 송대 4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범진(范鎭, 1007~1087): 송(宋)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경인(景仁). 벼슬은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지냈다. 왕안석(王安石)의 변법(變法)에 반대하여 사직하였고, 신당서(新唐書) 등의 편수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