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사람의 음식남녀 61

『食色紳言』,[明]龍遵 著

by 박동욱

[8] 여색을 완전히 끊은 유안세(劉安世)


유안세(劉安世)가 말했다.

“나는 평소에 일찍이 약을 먹지 않았는데 귀양을 갈 때 나이가 47살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함께 가시려고 했지만 온갖 방법으로 간곡히 사양해서 들어 드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늙으신 부모를 더운 지방에서 생기는 장기(瘴氣)가 있는 곳에 모셔가게 되면 이미 불효이니 의롭지 않은 것과 같은 일은 진실로 감히 할 수가 없었다. 부모는 행여 자식이 병들까 근심하는 것이나, 어떻게 병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다만 여색을 끊는다는 한 가지 일만이 있다 해서 드디어 결심하여 끊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병을 앓을 때가 없고 또한 밤중에 잠든 사이에도 변화가 없었다.”

진환(陳瓘)이 말하였다.

“공은 평생의 학술이 성(誠)으로써 들어가서 가는 데마다 성(誠) 아닌 것이 없었다. 무릇 여색을 끊는 것이 참으로 여색을 끊는 것이라면 마음이 여색에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이 말하였다.

“그렇다.”

공이 말하였다.

“나는 여색을 끊은 지 30년이 되어서 기혈과 생각이 다만 젊었을 때와 같다. 온종일 친구들을 영접하여 벼라별 이야기를 다하고 비록 밤에 잠을 안자도 이튿날 아침에는 정신이 여전하였다.”


劉元城云: “安世尋常未嘗服藥, 方遷謫時年四十有七, 先妣必欲與俱, 百端懇辭不許. 安世念不幸使老親入於炎瘴之地, 已是不孝, 若非義, 固不敢爲, 父母唯其疾之憂. 如何得無疾? 秪有絶欲一事, 遂擧意絕之. 自是逮今, 未嘗有一日之疾, 亦無宵寐之變.” 陳瓘曰: “公平生學術以誠入, 無往而非誠, 凡絕欲是真絕欲, 心不動故.” 公曰: “然.” 公曰: “安世自絕欲來三十年, 氣血意思只如當時, 終日接士友劇談, 雖夜不寐, 翼朝精神如故.”




[평설]

북송(北宋)의 학자인 유안세(劉安世)는 자가 기지(器之)이다. 사마광(司馬光)에게 수학하였다. 광동(廣東)과 광서(廣西) 등 멀고 험악한 곳으로 일곱 번이나 유배 가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으니, 소식(蘇軾)은 그를 ‘철한(鐵漢)’이라 일컬었다. 유배지에서 자신을 죽이려 사람이 찾아 올 것이란 사실을 알고도 조금도 동요 없이 손님과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저서로는『원성어록(元城語錄)』, 『도호록(道護錄)』 등이 있다.

그는 아픈 몸으로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여색을 끊었다. 그래서 건강을 줄곧 유지하게 되었다. 잠을 자지 않아도 다음날만 되면 정신이 쌩쌩하였다. 30년 동안이나 그런 생활을 유지했다니 초인적인 정신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평정한 마음 속에서 생사를 초월하여 날선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황제의 앞에서도 직언(直言)을 꺼리지 않아 전상의 호랑이[殿上虎]라고 불리었다.


[어석]

* 유안세(劉安世): 송(宋)나라 사람. 항(航)의 아들. 자는 기지(器之). 시호는 충정(忠定). 사마광(司馬光)의 제자. 벼슬은 간의대부(諫議大夫). 강직하여 전상호(殿上虎)라고 불리움. 저서는『진언집(盡言集)』이 있다.

* 진관(陳瓘): 송(宋) 나라 사람. 자는 영중(瑩中), 호는 요옹(了翁)이다. 그는 항상 이욕(利慾)과 의리(義理)의 사이에서 이욕을 버리고 의리에 의거해 행동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권신(權臣) 채변(蔡卞)의 당인(黨人) 설앙(薛昻)이 사서(史書)인 사마광(司馬光)의『자치통감(資治通鑑)』을 훼파(毁罷)하려 할 때에 반대하여 저지시키고, 채경(蔡京)이 해를 쳐다보면서도 눈을 깜박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뜻을 얻으면 방자무기(放恣無忌)할 것을 알고 배척하였으며,『존요집(尊堯集)』을 지어 왕안석(王安石)의 무망(誣妄)을 폭로한 것 등이 있었다.


유안세 초상화.jpg 유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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