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473)

by 박동욱

473. 쓸쓸한 밤[夜坐], 이민구(李敏求)

빈 집에 가을밤이 쓸쓸히 고요하고

네 벽이 서늘하니 취기도 사라지네.

외로운 잠자리 처량하여 잠 못 드는데

새벽녘 산비 소리 파초를 지나가네.

虛齋秋夜靜蕭條 四壁新涼酒氣消

孤枕悄然無夢寐 五更山雨過芭蕉


[평설]

가을밤 적막한 방에서 느끼는 고독을 섬세하게 그렸다. 가을밤에 혼자 앉아 있다. 간밤에 술을 마시고 잠을 청했지만, 서늘해진 방 안의 공기가 취기마저 가시게 한다.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어서, 밤을 꼬박 새워 버렸다. 그러다 새벽녘 산비 소리가 파초잎을 후드득 스쳐간다. 빈 공간, 취기의 사라짐, 잠 못 드는 고독, 새벽 빗소리로 이어지는 연속 공격이다. 텅 빈 집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명료해진다. 가을밤을 겨우 견뎌내자 새벽녘 비는 내린다. 아! 대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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