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504)

by 박동욱

504. 지팡이도 마다하고[陶店], 김시습

아이는 잠자리 좇고 늙은이는 울을 손보는데

봄물 풀린 시내에선 물새들 멱을 감네.

청산이 끝났어도 돌아갈 길 멀지마는

등나무 지팡이를 비스듬히 메고 가네.

兒打蜻蜓翁掇籬 小溪春水浴鸕鶿

靑山斷處歸程遠 橫擔烏藤一个枝


[평설]

이 시는 『매월당집』의 ‘기행(紀行)’시편 가운데 들어 있다. 김시습이 봄날 서울의 옛 친구를 찾아가는 길에 쓴 것이다. 시의 전반부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일상을 담담히 그렸다. 잠자리를 쫓는 아이의 천진함, 울타리를 고치는 노인의 근면함, 그리고 시내에서 노니는 물새의 자연스러움이 조화를 이룬다.

시의 후반부는 여정에서 보이는 시인의 마음을 담았다. 산이 끝났어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등나무 지팡이를 비스듬히 걸쳐 맸다. 다급함보다는 여유로움마저 느껴진다. 지팡이에 의지해 속도를 내기보다는 조금 고단하기는 해도 풍경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마음에 담아 놓고 싶었다. 이는 단순한 여정을 넘어 인생의 여정에서도 시인이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참고]

3구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하나 더 제시해본다. “청산이 끝날 때까지 돌아갈 길 멀지마는” 허균의 「성수시화(惺叟詩話)」와 『국조시산(國朝詩刪)』,『기아(箕雅)』등에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이 「山行卽事」라 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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