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102

성대중(成大中),「항우를 읊다[詠項羽]」

by 박동욱

102. 패자(敗者)의 조건

不忍捨虞姬(불인사우희) 우희를 차마 버리지 못했으니

安能殺沛公(안능살패공)  어찌 유방을 죽일 수 있었으랴

區區范亞父(구구범아부)  하찮은 범증(范增)은

但見叱咤雄(단견질타웅)  다만 호통치는 위세만 봤을 뿐이고,

淮陰差識人(회음차식인)  한신은 남다른 안목 있었으니

目以女子仁(목이여자인)  ‘여인의 인자함’이라 했네.

君看忽必烈(군간홀필렬)  그대는 쿠빌라이가

宮娥配斲輪(궁아배착륜)  궁녀로 갑옷 만들기 시킨 일 보아라.

성대중(成大中),「항우를 읊다[詠項羽]」


[해설]

항우의 실패 원인은 너무나 많았다. 첫 번째는 감정적 나약함이다. 우희에 빠져 있어서 유방을 죽일 기회를 놓쳤다. 두 번째는 항우 자신의 리더십 부족과 참모 범증의 전략적 안목 부족이다. 이것은 한신이 항우를 평가한 말에 근거한다. “항왕이 노기를 띠고 질타하면 천 사람이 한꺼번에 다 쓰러진다. 그러나 뛰어난 장수에게 내맡길 줄 모르니, 이는 필부의 용맹일 뿐이다.[項王喑噁叱吒, 千人皆廢. 然不能任屬賢將, 此特匹夫之勇耳.]”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史記』卷92「淮陰侯列傳」에 나온다. 세 번째는 과도한 인자함이다. 이것도 역시 한신이 항우를 평가한 말이다. “항왕은 사람을 만나면 공경하고 자애로운 태도로 대하면서 말 역시 인정이 넘치게 하며, 누가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눈물을 흘리고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지만, 정작 부하가 공을 세워 작위를 내려야 할 때는 인수(印綬)가 닳도록 쥐고 있으면서도 차마 내어주지 못하니, 이것이 이른바 부인의 인자함이라고 하는 것이다.[項王見人恭敬慈愛 言語嘔嘔 人有疾病 涕泣分食飮 至使人有功當封爵者 印刓敝 忍不能與 此所謂婦人之仁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史記』卷92「淮陰侯列傳」에 나온다. 이처럼 항우는 유방에게 패배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7∼8구는『元史』卷8「世祖本紀」의 “궁녀에게 갑옷 제작을 명했다[敕宫女制甲冑]”라는 기록을 각색한 것이다. 쿠빌라이는 궁중의 사치를 억제하며 실용적인 통치를 중시했다. 이는 항우가 실패하고 쿠빌라이가 성공한 원인 중 하나다. 권력자는 값싼 감정 따위에 휘둘려서는 안 되며, 철저하고 냉철한 판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참고]

7~8구의 “착륜(斲輪)”은『원사』의 “制甲冑”와 일치하지 않으므로, 해당 표현을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은 “수레바퀴 제작”이지만,『원사』의 “갑옷 제작” 기록을 반영해 의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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