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환(姜鼎煥),「한고조(漢高祖)」
황제의 두 얼굴
東征衣縞告諸侯(동정의호고제후) 상복 입고 동쪽 정벌 제후에게 고하노니
四海從風共討讎(사해종풍공토수) 온 세상 호응하여 다 함께 원수졌네.
若使懷王天假壽(약사회왕천가수) 회왕이 하늘이 준 수명을 누렸다면
堯傳舜受奠金甌(요전순수전금구) 요 전하고 순이 받듯 나라 안정시켰으리
강정환(姜鼎煥),「한고조(漢高祖)」
[평설]
이 시는 한고조 유방의 제위 찬탈을 다뤘다. 표면적으로는 유방의 업적을 기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권 장악의 부당성과 회왕에 대한 배신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1·2구는 유방이 항우 토벌에 나선 과정을 묘사한다. 항우가 회왕(懷王)을 살해하자, 유방은 상복을 입고 제후를 규합하여 항우가 있는 팽성(彭城)을 공격하였다. 이는 유방이 회왕의 복수를 정치적 명분으로 삼아 백성과 제후의 지지와 결집을 이끌어 낸 것이지만, 사실은 철저히 계산된 권력 장악의 수단이었다.
3·4구에서는 유방의 속내를 읽어낸다. 만약 회왕이 생존했다면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선양(禪讓)한 것처럼 유방 역시 정당한 계승 절차를 통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회왕이 죽고, 유방이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결국 ‘선양’이 아닌 ‘찬탈’이 되어 버렸다.
유방의 행동은 회왕에 대한 충의(忠義)의 발로가 아니라, 회왕의 죽음을 정치적 도구로 삼아 권력을 거머쥔 결과였다. 결국 항우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인은 회왕 복수라는 명분 뒤에 감춰진 유방의 위선을 예리하게 포착해내어 권력자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