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105

김극성(金克成),「한고조(漢高祖)」

by 박동욱

창업 군주의 명암

鹿逸望夷宮(녹일망이궁) 사슴이 망이궁을 달아났으니

龍興豐沛中(용흥풍패중)  용이 풍패 땅에서 일어났네.

手提三尺劍(수제삼척검)  손에는 석 자 되는 검 들고서는

歌罷大王風(가파대왕풍)  대풍가를 부르며 마치었다네.

有力攻強楚(유력공강초)  힘 있어 강한 초나라 쳤다지만

無能制女戎(무능제녀융)  능력 없어 여인 무리 제어 못했네

商山芝不老(상산지불로)  상산의 지초는 늙지 않아서

羽翼付溟鴻(우익부명홍)  날개를 큰 기러기에게 맡겼구나

김극성(金克成),「한고조(漢高祖)」

[평설]

이 시는 한고조 유방의 성취와 한계를 그려내고 있다. 1·2구는 진한 교체기의 역사적 전환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진 이세 황제가 환관 조고에 의해 망이궁에서 자살한 사건을 가리키며, 진나라의 몰락을 의미한다. 반면 미천한 출신의 유방이 황제로 등극하였다. ‘사슴’과 ‘용’의 대비를 통해 구세력의 몰락과 신세력의 부상을 인상적으로 부각했다.

3·4구는 유방의 무력 통일과 천하 장악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준다. ‘삼척검’은 유방이 “포의의 신분으로 석 자 칼을 쥐고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이것이 하늘의 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吾以布衣提三尺劍取天下, 此非天命乎?]”고 한 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대풍가’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고향인 패현에서 부른 자축의 노래다.

그러나 5·6구에서 시상이 전환된다. 유방이 외적으로는 초나라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했지만, 내적으로는 여후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 천하의 주인이 되는 일에는 성공했지만, 권력 내부를 완벽히 통제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7·8구는 상산사호의 존재를 통해 유방의 정치적 한계를 에둘러 지적했다. 절개를 지킨 고고한 은사들에게조차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현실, 그리고 그들의 명망에 기대어 태자의 지위를 보전해야 했던 상황은 창업 군주의 위태로운 권력 기반을 암시한다.

유방은 평민 출신으로 제왕이 된 인물이다. 천하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권력을 굳건히 지키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창업과 수성은 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이 시는 유방이라는 인물의 명암을 제시하며, 창업 군주의 성취와 한계를 균형 있게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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