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108

송익필(宋翼弼), 「차인(次人)」

by 박동욱

천리와 권력

白馬盟寒負乃公(백마맹한부내공) 백마 맹세 식어가자 유방을 져버렸지만

安危只係採芝翁(안위지계채지옹) 나라 안위 오직 지초 캐던 은자에게 달렸었네.

天理至明終不隱(천리지명종불은) 천리는 너무 밝아 끝내 못 숨겨지니

一人宜與萬人同(일인의여만인동) 한 사람이 만 사람과 함께해야 하리라


[평설]

조정의 신하들은 권력의 향배에 민감하다. 그러나 정작 역사 속 현실에서 천리는 언제나 권력 뒤에 밀려났다. 한고조가 죽자 여후가 여씨 일족에게 왕권을 넘기려 했다. 대부분의 신하가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왕릉만이 “고황제께서 백마를 잡아 맹세하기를 유씨가 아닌데도 왕 노릇 하려는 자는 천하가 함께 치라 했다”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진평과 주발 같은 중신들은 여후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들은 서슬 퍼런 권력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이보다 앞서 한고조가 태자를 척부인의 아들로 바꾸려 했다. 장량이 상산사호를 초빙하게 함으로써, 한고조는 후계자 교체를 포기하게 되었다. 상산사호가 아니었다면 후계자는 바뀌었을 것이고 나라는 크게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중신들은 권력을 좇았지만, 상산사호는 천리를 따랐다.

천리는 언제나 유효하다. 부당한 권력은 결국 단죄받고 만다. 후에 여씨 일족은 모두 제거되었고 한문제가 즉위했다. 이는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도 천리 앞에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군주도 천리 앞에 예외일 수 없으니 천리를 바탕으로 통치하라는 준엄한 경고다. 권력을 좇을 것인가 천리를 따를 것인가? 이 물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천리를 따르는 권력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천리를 외면한 권력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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