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언광(沈彥光), 「의영사(擬詠史)」, ‘범증(范增)’
떠나지 못한 사람의 최후
漢金初誤項王圖(한금초오항왕도) 한나라 예물이 애초에 항우의 도모 그르쳤으니
疽背還如小丈夫(저배환여소장부) 등에 난 종기로 죽은 것은 도리어 졸장부 같았네.
自是沐猴同烏喙(자시목후동오예) 이로부터 항우는 구천(句踐)과 같았는데
扁舟早不學陶朱(편주조불학도주) 조각배 타고 떠난 범려를 일찌감치 안 배웠나.
심언광(沈彥光), 「의영사(擬詠史)」, ‘범증(范增)’
[평설]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언제까지 함께 있어야 하는가?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고 끝까지 갈 필요는 없다. 내가 생각했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그 사람이 예전과 달라졌다면 더 이상 함께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의리란 이름으로 무조건 끝까지 함께 하는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범증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관계를 끊는 시기도 적절치 않았다. 이처럼 처세와 처신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홍문연은 항우가 유방을 제거할 수 있는 적기였다. 기회를 잡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유방은 홍문연에서 달아난 뒤 장량(張良)이 항우에게는 백벽(白璧) 한 쌍을 바치고 범증에게는 옥술잔[玉斗] 한 쌍을 바쳤다. 이때 범증은 항우를 떠났어야 했다. 뒤에 진평에 반간계에 걸려 항우는 범증을 내쳤고, 범증은 고향에 돌아가다 등창이 나서 객사했다. 범증의 비참한 죽음을 졸장부라 표현하였다.
항우나 구천이나 끝까지 함께 갈 사람은 아니다. 범려는 구천과는 어려움을 같이할 수는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벼슬을 버리고 주저 없이 떠났다. 이름을 바꾸고 은거하다가 제(齊)나라에 들어가서 거부(巨富)가 되었다. 범려의 처세는 배울 만하다. 누군가를 훌쩍 떠난 사람은 새로운 인생을 살았지만, 끝내 떠나지 못한 사람은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사람과의 이별은 만남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아름다운 이별을 통해 각자 다른 삶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