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급(金友伋), 「진평(陳平)」
본심을 잃은 처신
歸劉當日輕秦鹿(귀유당일경진록) 유방에게 귀부할 땐 진나라도 경시하더니
封呂他年畏野雞(봉려타년외야계) 여씨를 왕으로 봉할 땐 여후를 두려워했네.
一節事君前後異(일절사군전후이) 임금 섬긴 곧은 절개 앞뒤가 달랐으니
功名無奈素心迷(공명무내소심미) 공명에 끌려서는 본래의 맘 잃었다네.
김우급(金友伋), 「진평(陳平)」
[평설]
이 시는 진평의 정치적 처신을 비판적으로 본 작품이다. 1구의 ‘진록(秦鹿)’은『사기(史記)』「회음후전(淮陰侯傳)」에 “진나라가 사슴을 잃자, 천하가 함께 그 사슴을 쫓는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천하의 주인이 바뀌는 격변의 정국을 상징한다. 진평은 항우를 떠나 유방에게 몸을 맡겼으니 이는 천하의 향배를 예리하게 포착한 결단이라 할 수 있다.
2구에서 ‘야계(野雞)’는 여후를 가리킨다. 유방 사후에 여후는 여씨 일족을 왕으로 봉하여 여씨가 다스리는 천하가 되었다. 진평은 유방 시대에는 ‘진록’을 얕잡아 볼 만큼 패기가 넘쳤다. 그러나 여후 집권기에는 ‘야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처신은 단순한 변절이라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 타협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여씨 세력을 키우는 꼴이 되었고 결국 주발과 진평이 여씨를 주멸하는 역설을 낳게 된다. 왕릉(王陵)은 여씨 일족의 득세를 단호히 반대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진평이 묵인하며 자리를 지킨 모습은 왕릉과 여러모로 대조된다.
유방에게 보였던 절개를 꺾고, 유방 사후에 여후가 실권을 장악하자 여씨 정권을 위해 봉사했다. 정치적 생존을 위해 신념을 굽힌 결과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평생 품어온 신념과 절의를 내던졌던가. 역사는 신념을 지킨 자를 지사(志士)라 기록하고, 권력을 택한 자를 모리배라 기록한다. 진평은 과연 어느 쪽에 기록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