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주(李廷柱), 〈우연히 쓰다(偶題十四首)〉
분서(焚書)의 불씨, 아방궁(阿房宮)을 태우다
秦皇愚黔首(진황우검수) 진시황은 백성들을 우매케 하려
焚籍火焰中(분적화염중) 화염 속에 책들을 불태웠더니
餘火延宮殿(여화연궁전) 남은 불씨 궁전으로 옮겨붙어서
咸陽三月紅(함양삼월홍) 석 달 동안 함양성 붉게 탔었네.
이정주(李廷柱), 〈우연히 쓰다(偶題十四首)〉
[평설]
이 시는 진시황이 저지른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자신의 왕조를 파멸로 이끈 아이러니를 다룬 작품이다. 진시황은 백성들을 우민화(愚民化)하기 위해 책들을 모조리 모아다가 불에 태웠다. 이 시에서 가장 정채로운 부분은 책을 태운 불씨가 궁궐을 태우게 되었다면서 불의 이미지를 연결한 것이다. 책을 태운 불길이 권력의 상징인 아방궁으로 옮겨붙으면서 파멸해갔다. 결국 백성들을 폭압 하던 정권은 자신도 몰락하는 최후를 맞게 된다. 진시황이 건축을 명했던 아방궁은 항우에 의해 불 질러서 석 달이나 타면서 정권의 종언(終言)을 고하였다.
자신의 정권을 누리려고 사용했던 수단이 자신의 정권을 붕괴시키는 도구가 된다. 권력이 백성의 눈과 귀를 막으려고 불을 피웠던 순간에 이미 스스로 파멸의 불씨를 피운 셈이다. 어떤 폭정도 백성들을 모조리 잠재우지는 못한다. 모든 지도자와 정권이 이 점을 망각하다가 초라하게 사라져갔다. 역사는 폭제(暴制)가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20세기 수많은 독재 정권이 갖은 통제를 가하다가 혁명의 불길로 망해갔다. 권력은 백성들을 누르는 데 쓸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돕는 데 써야 한다. 역사는 폭정의 결과를 예고해 주지만, 권력자는 언제나 이것을 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