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한(申光漢), 「漢高」
패자의 아쉬움
天人歸德若江河(천인귀덕약강하) 하늘과 사람 돌아옴이 강물 같았고
一劍餘威四海加(일검여위사해가) 검 한 자루 넘친 위세 온 천하 뒤덮었네.
縱有詩書安足事(종유시서안족사) 비록 시서가 있다 해도 어찌 충분하랴
霸心終止大風歌(패심종지대풍가) 패자의 마음은 끝내 대풍가에 그쳤다네.
신광한(申光漢), 「漢高」
[평설]
이 시는 한고조 유방의 영욕을 균형감 있게 살피고 있다. 각지의 세력들이 유방 휘하로 모여드는 모습은, 마치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자연스러웠다. 이는 천명이 유방에게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2구는 『史記』「高祖本紀」에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내가 포의의 신분으로 일어나서 석 자의 칼을 쥐고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이것이 하늘의 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吾以布衣提三尺劍取天下, 此非天命乎?]”라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유방은 검 한 자루로 온 천하를 차지한 셈이었다. 3구는 시서(詩書)는 『史記』「陸賈列傳」에 “육가(陸賈)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에게 시서(詩書)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유방이 ‘나는 말 위에서 무력으로 천하를 얻었다. 시서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乃公居馬上而得之, 安事詩書?]”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시서로 상징되는 문치(文治)는 유방의 통치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대풍가는 한고조(漢高祖) 유방이 천하를 평정한 뒤, 고향인 패(沛)에 가서 친지와 친구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베푼 자리에서 부른 노래다. 4구는 일종의 패권적 자기 확인으로 해석된다. 한고조는 천하를 얻는 데는 뛰어났지만 다스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무력만 있었지 문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1,2구는 유방의 무력에 의한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3,4구에서는 문치의 부재와 패권적 한계를 아쉬워한 것이다. 이 시는 유방의 성취가 결국 패권의 경지에 머물렀음을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