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현(李齊賢),「夏侯嬰」
하후영의 충의
劍下淮陰爲大將(검하회음위대장) 칼 아래 있던 한신을 장군으로 삼았었고
車中季布作名臣(차중계포작명신) 수레 실린 계포를 명신으로 만들었네.
滕公鑑識眞難及(등공감식진난급) 등공의 안목은 참으로 미치기 어려우나
最是高皇善用人(최시고황선용인) 가장 뛰어난 것은 한고조의 사람 잘 쓰는 거였네.
攀龍附鳳豈無人(반룡부봉기무인) 임금 섬겨 공명 세운 이가 어찌 없었겠냐마는
驂乘初終只一臣(참승초종지일신) 임금 줄곧 모신 신하 오직 그 사람 뿐이었네.
擁樹兩兒誠不忍(옹수양아성불인) 두 아이 보호한 건 차마 못하는 성의이니
帝心應念放麑仁(제심응념방예인) 황제 마음에도 응당 인자한 마음 떠올랐으리.
이제현(李齊賢),「夏侯嬰」
[평설]
이 시는 하후영이 한고조를 보필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신은 어떤 일에 연루된 사건으로 사형 위기에 빠졌으나, 하후영이 그의 인품을 알아보고 살려주었다. 반면 계포는 항우의 부하로 유방을 곤경에 빠뜨려서 유방에게 보복을 당할 처지였지만, 하후영의 설득으로 유방의 신임을 얻어 명신(名臣)이 되었다. 이처럼 1·2구는 하후영의 인재를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3·4구는 하후영의 혜안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인재를 과감히 등용한 유방의 용인술을 높이 평가한다. 5·6구는 하후영의 특별함을 강조한다. 하후영은 수레를 몰았는데, 이는 당시 장관에 해당하는 벼슬이었다. 많은 신하들이 공을 세웠지만, 유방과 처음부터 끝까지 신뢰를 유지한 이는 하후영뿐이었다. 7·8구는 하후영의 인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항우에게 쫓기던 위급한 순간, 유방은 효혜(孝惠)와 노원(魯元) 두 자녀를 여러 번 수레 밖으로 내던졌으나, 하후영은 매번 수레를 멈추고 두 아이를 다시 태웠다. ‘방예(放麑)’는 사슴을 놓아준다는 뜻으로, 인덕을 지닌 사람에 대한 전고로 쓰인다. 결국 유방도 하후영의 정성에 감화되어 인자한 마음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후영과 유방의 관계는 인재를 알아보고 끝까지 신뢰한 군주와, 변함없이 충성한 신하의 모범적 사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