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115

by 박동욱

천하통일의 웅장한 뜻

萬騎紛紜博浪沙(만기분연박랑사)  박랑사에 많은 기병 어지럽게 몰려들자

一椎聊欲碎宮車(일추료욕쇄궁차)  철퇴로 황제 마차 부수려 하였다네.

少年壯志呑天下(소년장지탄천하)  소년의 웅대한 뜻 천하를 삼키려 하였으니

肯割鴻溝作漢家(긍할홍구작한가)  홍구 갈라 한나라를 만들려 하였겠나

이경동(李瓊仝),「장량(張良)」


[평설]

이 시는 장량의 지녔던 복수의 분노가 어떻게 시대를 바꾸는 전략으로 승화되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2구는 박랑사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장량은 창해역사(倉海力士)를 시켜 진시황을 시해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시에서는 암살 미수와 천하통일을 연결하는 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황석공을 만나 책을 얻고, 항우의 숙부인 항백과 교유하는 등 정치적 감각을 갈고 닦은 시기가 있었다. 그 뒤 한(韓)나라 부활에 노력하다가 한왕이 죽자, 유방에게 몸을 맡긴다. 이때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미 뛰어난 전략가로 성장해 있었다. 3·4구는 항우와 유방이 홍구(鴻溝)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기로 한 맹약을 가리킨다. 그러나 장량은 이 협정이 단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기만책일 뿐, 최종 목표는 천하 통일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원전 203년 항우가 한 고조와 종전(終戰)을 약속하여 홍구(鴻溝)를 경계로 서쪽은 한(漢)나라, 동쪽은 초(楚)나라의 영토로 정하고 태공(太公)과 여후(呂后)를 풀어주었다. 한 고조가 군사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장량과 진평(陳平)이 그 약속을 어기고 항우(項羽)의 군사가 지치고 주린 틈을 타서 공격할 것을 권하였다. 유방(劉邦)은 그 계책을 따라 항우를 추격하여 마침내 해하(垓下)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장량은 천하를 다 차지하는 제국을 건설하는데 뜻이 있었지, 홍구를 경계로 초나라와 천하를 양분할 생각이 없었다. 진시황의 어가에 직접 칼을 겨눴던 대담함은 여전히 그에게 살아 있었다. 장량은 한나라의 천하통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포부가 이루어지자, 주저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 권력을 욕망했고, 차지했으며 마침내 초월했다. 그의 등장은 대의를 품은 분노였고, 퇴장은 욕망을 이긴 초연함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114